마태복음 강해

현실에 맞는 우리의 기도(24)2

박성산 목사 2016. 1. 18. 00:20

현실에 맞는 우리의 기도(마6:5-8)(24)2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 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 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 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오늘은 기도에 대하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기도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가짐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시는 유익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기도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안목에서 영적인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거룩한 행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약 2000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지금도 여전히 동행하시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성도야말로 현실속에 사는 진정한 백성임을 우리는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도는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주님을 귀신 대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성도만이 현실을 사는 것입니다. 분명히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은 지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꿈과 같은 비현실속에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에는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속에서 성도는 기도를 현실감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지금 옆에 계시는데 우리는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요? 누구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본문 7절 말씀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왠지 5분보다 10분을 기도하면 응답을 빨리 받을 것 같고 자신이 뿌듯함을 느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신학교 2학년 때 어느 교회의 교육 전도사로 있을 때 일입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개척 이후에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철야기도를 혼자서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아마 4~5시간 정도 될 것입니다. 기도의 대부분을 방언으로 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러면서 새벽기도를 마치면 그 목사님은 교회 주위를 7바퀴를 돌았습니다. 왜냐하면 여리고 성을 생각하면서 그 동네가 복음으로 완전 초토화가 되고 교회가 그만큼 커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의 기도에 응답하셨을까요?

 

본문에 나오는 '중언부언'이란 것은 정말 자기가 꼭 얻고 싶은 것을 계속 반복하고 강조해서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제발 이것만"하는 식으로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식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달라고 하는 것은 모두 결국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의 소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시고 사라지는 예수님을 11제자들이 붙잡을 수 있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다 가지기 위하여 예수님마저 나의 소유로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중언부언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유물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잘 안되면 이러한 자기반성을 하게 됩니다.

1. 내가 기도가 부족했구나.

2. 기도 생활을 충실히 해도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 당치 않아서 기도 응답이 안되는구나.

 

그러나 모두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8절에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 성도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먼저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부족해서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기도의 내용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도의 중심에 누가 있는 것입니까? 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내가 기도를 잘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뭔가가 부족하면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해주신다면 기도의 주체는 하나님이 아닌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아시고 계신다면 기도는 이미 누구의 것일까요?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것인 줄 믿습니다. 기도는 물론이고 응답도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성도는 중언부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아멘으로 인정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긍하든지 하지 않든지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 사실이 현실로 다가 오는지 여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성에 대해서 무시하고 이방인과 같은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가집니다. "내가 이제부터라도 기복 신앙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 주시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직까지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까지도 자기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라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아예 기도를 할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귀에 걸면 귀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영적으로 세상을 보면 이 세상 중앙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목적을 위하여 주의 백성들에게 기도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끌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가 미리 준비해서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도로서 우리는 단지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성도는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성도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욕심에 따른 이방인의 기도는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죄인이고 나약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늘 두 가지의 기도가 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기도와 그리고 예수님의 살아계심으로 인해서 자신이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일에 참여하게 됨을 감사하는 기도도 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기도는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나의 소원을 들어줄 통로가 아닌 것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의 기도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