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치심(37)
예수님의 가르치심(마7:24-29)(3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 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 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 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 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세상일은 내 마음 같지 않지가 않음을 나이가 들수록 느낍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줄 압니다. 아마 우리의 소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가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영원토록 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방향은 옳지 않음을 아시고 세상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우리의 걸음을 날마다 인도하십니다. 물론 세상도 나름대로 심판에 대해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도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공포에 대해 나름대로 대처하기 위해서 자기 방어에 맞서다보니까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종교가 되고 그 사람의 삶이 되고 그리고 죄가 되어서 결국에는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만든 심판의 대안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너진다’ 다른 말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26절)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이것으로 기준을 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들여다보면 하나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그 분이 우리에게 명령을 하신 것을 지키면 복과 더불어 구원이 될 것이고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하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믿는 분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그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자기자신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도 자기자신을 위해서 믿어드리는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같이 말합니다. ‘예수님 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그것을 좀 알려주세요. 그래야 내가 복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고 구원을 해주실 것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의 선한 행위를 행하거나 아니면 행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을 항상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마5장에서 7장까지 산상설교를 하신 것은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 율법을 연구해서 나름대로 구원과 저주의 기준을 정한 것이 있습니다. 오직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구원받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대학자들이 또 하나 오해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을 예수님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은 심판의 기준은 오직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인가를 산상설교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9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즉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것이 기존에 이미 유대사회에 알려져 있는 그런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해석하는데 있어 인간의 정성과 노력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방향으로 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어서 지킬 수 있고 만약에 지키지도 못할 것을 주셨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농락한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취지로 율법을 주신 적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율법 해석은 그 어떠한 능력이 많은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못 보신척하시거나 그냥 넘어가시지 않고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모든 인간은 꼼짝없이 율법에 갇혀 버린 셈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율법에 의해서 의롭다함을 얻어서 구원을 얻든지 아니면 율법을 지켜내지 못해서 죄인이라는 심판과 함께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원히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서 늘 강조하는 것은 ‘거룩’과 ‘신앙의 성장’입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단어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정말 거룩하고 성장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우리가 나아가야 될 방향일까요? 그래서 지금도 신자들이 교회에서 거룩과 성장을 위해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것입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밖에 없습니다.
이 진리를 나중에 깨달았던 사도 바울은 갈3:10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한 갈3:21-22에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다’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체를 드러내시는데 어떤 식으로 드러내시느냐하면 모든 인간이 그러니까 그 누구도 하나 예외없이 다 죄 안에 가두어두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이 사실도 모른채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나섭니다.
갈4장에 보면 이런 사람은 성령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육체에 그대로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구원받는데 있어 '율법 지키기'가 필수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갈2:16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꾸만 무엇인가를 지켜서 구원을 얻는데 자기의 행위를 보태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다 무너진다라는 말씀인데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라는 말씀을 단순히 말씀을 듣고 잘 지킨다라고 이해하시면 또다시 율법에 걸려든 꼴이 되고 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자’ 다른말로 ‘예수님을 믿으면’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성도는 예수님이 나의 구원의 처음과 끝을 온전히 이미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석되시는 예수님이 그 성도의 터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얻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을 오늘 24절에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주셔서 믿게 하시고 그저 주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