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두 소경의 고백(48)

박성산 목사 2016. 7. 18. 00:11

두 소경의 고백(마9:27-34)(48)

 

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 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 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 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31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32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 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 낸다 하더라

 

 

 

 

 오늘은 두 소경과 벙어리 된 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는 장면입니다. 마9장에는 병자들과 소외된 자들이 나오는데 중풍병자, 세리나 죄인들, 죽은 소녀, 혈루병자 여인이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치료받고 긍휼의 은혜를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나 높은 위치에 있는 자나 낮은 위치에 있는 자를 구분해서 예수님은 낮은 위치에 있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함께 계시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부자이고 높은 자리에서도 예수님을 영접한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성경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예수님을 바로 믿고 있느냐가 관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양보하실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믿음으로 천국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 대충 알겠는데 믿음을 갖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대인관계는 서로 신뢰를 쌓아감으로 이루어집니다. 대기업에서 써먹고 있는 이미지마케팅의 바탕은 신뢰를 고객들에게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마음을 사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물론 친구지간이나 이웃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신중을 기하는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8-29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예수님은 간절히 눈을 뜨기를 소망하는 소경들에게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지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보면서 그것이 갈라질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요? 또한 겨자씨 만할 정도로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에 있는 나무가 뽑혀서 바다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일까요? 가만히 서 있는 나무가 뽑혀서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간다’는 것이 진리지만 나를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능력 밖의 문제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도 믿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런 믿음이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소경들이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긴 용어를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의 자손이 오셔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하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9:6-7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을 굳건히 지키시며 평강과 공평과 정의로 영원히 보존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반드시 이루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취하실까요? 사11:1-3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셔서 세상에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고 심판할 자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온 세상을 다스릴 메시야는 왕으로 오시지 초라한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경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인줄 알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쌍히 여겨달라’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히 눈 좀 뜨게 해달라는 이야기일까요? 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왕하 6-7장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람 군대가 쳐들어와서 사마라아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성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아사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이스라엘 왕이 시찰을 하고 있었는데 두 여인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자기가 낳은 아기를 잡아먹기로 약속을 했는데 상대편의 여인이 아기를 잡아먹고서는 그 다음날에 막상 자기의 아들을 내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아기를 양식으로 내놓은 여인이 너무나 억울해서 왕에게 호소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너무나 현실이 참담해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원망을 합니다.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내일 이맘쯤에 밀가루 한 말에 단돈 100원 밖에 안할 것이고 보리 가루 두 말에는 단돈 100원 밖에 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양식이 풍성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내일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엘리사의 말을 믿는 믿음이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나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에게 모든 인생을 던져버리는 믿음은 같은 차원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엘리사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믿음을 다시한번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의 말을 비웃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장관인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낸들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그 와중에 사마리아 성 안에 문둥병자 네 명이서 이런 말을 주고 받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성에서 굶어죽든지 아람 군대에게 칼에 찔려 죽든지 마찬가지이다. 아람 군대에게 잡히더라도 죽을 때까지 양식이나 입에 넣고 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얼마나 양식이 없으면 문둥병자들이 그렇게 결정을 했을까요?

그들은 황혼이 질 무렵에 아람 군대가 있는 진영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많던 아람군대가 어디로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무기와 식량을 그냥 두고 황급히 빠져나간 것입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문둥병자들의 발걸음을 마치 아람 군대의 귀에는 애굽 나라의 대군이 쳐들어오는 말발굽 소리로 듣게 하신 것입니다.

 

문둥병자들은 거기서 실컷 포식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서 사마리아성에 있던 사람들은 아람 군대가 남기고 간 양식으로 배불리 먹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말을 조롱했던 군대장관은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습니다.

 

천국에 가는 공식은 “예수 믿으면 천국”입니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기로 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오늘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가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날 성도는 소경이나 문둥병자와 같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늘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성도들의 것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