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117)

박성산 목사 2018. 1. 4. 12:25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

(마20:1-16)(117)

1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 내고

3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 라

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 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5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 리를 품군으로 쓰는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 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 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 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 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 리라

 

 

 오늘은 2017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나간 세월은 항상 아쉬움만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우리에게 고마움을 남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지나보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슬픔도, 기쁨도, 행복과 불행함 모두 것이 과거라는 기억에만 남았을 뿐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말없이 다가오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잠시도 쉬지도 않고 우리에게 계속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천국은 사실은 지옥이고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지옥이 사실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이기 때문에 천국은 좋은 곳이고 지옥은 나쁜 곳이라고 생각해서 나쁜 곳인 지옥을 싫어하지요. 천국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에 가는 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천국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버려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1절에 ‘천국은’이라는 단어와 16절에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 사이에 천국에 대한 내용이 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러한 천국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천국에서 오신 예수님이 소개하시는 천국과의 충돌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현장에서 누가 이길까요? 사람들이 이길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이기실까요?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거부당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편에 서 있다면 역시 우리도 거부당하는 삶을 기대하셔야 할 것입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삶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모진 수모와 핍박을 당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천국관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은 14절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여러분이 천국백성이라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자기의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만 들어가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져야 성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불만할 수밖에 없지요. 자기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무시당하니까요.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성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면 행복하고 기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불행하고 슬픔을 느낍니다. 모든 것이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볼 때에 공평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포도원의 주인은 일관성 있게 ‘나의 포도원은 나의 뜻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보시면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놀고 섰는 사람들’입니다. 7절에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원래 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놀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포도원주인이 놀고 있는 사람을 찾아 내주시고 불러주심으로 받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해서 그 댓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불러주심 그 자체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것만큼 고마운 일은 없으니까요.

 

 유대인들은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일과시간입니다. 3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보면 9시, 6시는 12시, 9시는 오후3시, 11시는 오후 5시, 12시는 오후6시니까 퇴근시간을 말합니다.

 

포도원주인이 3시, 6시, 9시에 나가서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심지어 퇴근시간이 가까운 11시에도 사람들을 데려와서 일을 하게 해서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먼저 와서 더 많이 일을 한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을 많이 한 사람과 일을 조금 한 사람의 품삯의 차이가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본문 12절에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수고와 더위를 견디면서 일을 한 댓가는 일찍와서 일을 한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들과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과 상관이 없는 일들은 다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받았으면 나머지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만의 세계를 꿈꿀 때는 모든 것이 심각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안 될까봐 걱정하고 망할까봐 두려워하고 긴장하면서 마음은 어둡기만 합니다.

 

성도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 있더라도 오래가지 않아요. 금방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주시고 불러주시고 끝까지 인도하시고 보살펴주심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본문 14-15절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하나님의 선하심은 세상에서는 불만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역시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이 내 속의 선하심으로 작용을 하게 되고 나 같은 죄인을 포도원에서 일꾼으로 삼아주심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온자는 자기의 길을 가버리고 나중 온 자는 주인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선하신 분이 우리에게 선을 베푸실까요? 악을 베푸실까요? 그러면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이 선이 아닐까요? 구원받은 백성의 삶은 선으로 인도함을 받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안기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됨을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