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자 하는 자와 예수님을 따르는 자(118)
크고자 하는 자와 예수님을 따르는 자
(마20:20-28)(118)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 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 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 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 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 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 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 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시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것에 속고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원리에 따라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원리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높고 낮음의 원리입니다. 즉, 높으면 좋고 낮으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실례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베대의 아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내인 살로메가 두 아들(요한과 야고보)을 데리고 와서 ‘당신이 왕이 되시거든 우리아들 중에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그동안 따라다니면서 고생을 했으니까 그에 대한 댓가를 달라는 말이니까요.
우리도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 세월만큼 업적이 되어서 그에 대한 댓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사랑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예수 잘 믿는 ‘나’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과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였으니까 ‘예수님, 주의 나라가 임할 때에 어떤 자리에 있게 됩니까?’라는 말은 당연한 말일 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도무지 사라질지 모르는 이기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오시면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 될 것 중에 하나가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이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인데요.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자꾸만 땅 따먹기 하는 것 같아요. 매일 큐티를 하면서 ‘오늘은 이 말씀을 지켜야지’ ‘내일은 저 말씀을 지켜야지’하면서 결심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매일 성경의 계명을 지키기 위한 땅 따먹기식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지요.
계명은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씻으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만큼 더러운 죄인인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계명을 지키십니까? 아니요. 절대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오늘 지킨다고 하더라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지킬 수 있으십니까? 절대 못합니다. 그러한 ‘나’를 보게 하기 위해서 계명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는 마귀의 세상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함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테두리를 만들어 준 것이 성경입니다. 다른 말로 자신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지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해되시지요?
이러한 자신의 정체조차 모르는 우리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 분이 우리에게 ‘너희들이 지금 속으면서 살고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귀가 세상의 원리를 만들어서 어느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딤후3:13-14절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제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에게 그렇게 진리를 증거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마귀가 만들어 놓은 법칙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예수님을 따라서 지금까지 왔는데 그에 댓가를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다고 해서 그에 대한 댓가로 구원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의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죄인이 법을 지켰다고 해서 그 법이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법이 죄인을 구원한다고 하면 법을 지킨 나의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천국에 갈 수있다는 논리가 되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법을 주신 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법을 주신 거예요.
이와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법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법을 자키면 반드시 지킨 만큼 댓가를 바라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몰라요.
본문 22-23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는 말씀은 신앙을 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해야 되는지 또한 무엇을 기도해야 되는지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모를 수밖에요.
이러한 무지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예수님의 잔은 자신을 깨뜨리는 잔입니다. 자신의 생명의 피를 담아서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마시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죽여서 흘러나오는 피를 담은 잔을 마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마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의 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원리는 크고자 하는 것,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원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을 섬기는 자가 될 것이고 종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마귀의 원리에 따르는 자와 반대로 예수님을 끝까지 좇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믿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의지, 자신의 믿음, 자신의 신념, 자신의 수고를 의지하여 살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잔을 마시는 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제자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