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큰아들(125)
진짜 큰아들(마21:28-32)(125)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 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 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 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 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 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기독교에는 내용이 있습니다. 무엇을 믿는 지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믿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믿는 것과 같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자존심만을 내세워서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직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우리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사람들을 교육을 하거나 설득할 것들을 추려서 하나님은 이 내용으로 구원시킨다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 때문에 예수님과 충돌을 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내용이 있는데 소위 종교계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 증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을 살리는 체제를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총회, 노회, 교회라는 체제를 만들어 놓고 법을 앞세워서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고 하는 내용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서 신앙으로 대체 시켜버립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만 그런 것도 아니고 오늘날 한국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를 접어들면서 러시아라는 나라에도 그러한 체제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교회의 형편에 대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에서 정교회가 얼마나 정치화가 되었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을 알 수 있는데요.
어느 날 대주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예수님도 참석을 하셨는데 그들이 예수님께 하는 말이 ‘예수님, 그냥 가세요. 우리가 얼마나 완벽한 체제를 만들어 놓고 정치적으로 조직을 갖추어 놓았는데 굳이 재림을 하셔서 심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법을 잘 지키면 구원될 것이고 우리가 만들어 놓은 교회법을 안 지키면 지옥에 가도록 완벽한 제도를 만들어 놓았으니까 예수님은 걱정 마시고 그냥 가시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러시아는 정교회를 믿습니다. 온 국민이 신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들을 조직적으로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온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신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이지요. 신의 이름을 내세우면 누구라도 무조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성찬식을 이용했는데요. 성찬식에 참여한 사람은 구원을 얻은 증거라고 신부들이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찬식을 참여한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성찬식을 통하여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죄를 지은 자를 벌하는 것 중에 가장 큰 벌이 성찬식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고 있는 신부가 정치계에 핵심으로 있는 이상 그 누구도 거역을 못했습니다. 성찬식을 신부만이 거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도가 어찌 그 당시에만 있었겠습니까? 제가 중고등부에 있을 때 설교단상에는 아예 못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까 목사님만 올라가는 거룩한 곳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 당시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은 사찰집사님이 청소하시러 올라가는 것을 보고 ‘청소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올라가도 괜찮은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담임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동영상을 최근에 본 적이 있는데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당신들이 모시고 있는 목사를 잘 섬기십시오. 그러면 복 받습니다.’는 내용을 보고 마음이 참 씁쓸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의 중보자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중보자가 하는 예식에 참석만 하면 자동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간편한 방식을 아주 먼 옛날부터 원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대형교회에 출석만하면 자동으로 천국가는 줄 아는 신자와 다를 바 없어요. 그 주동자들이 누굴까요? 소위 신학대학교를 나온 자들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그들 앞에 서계십니다. 그리고 둘째아들로 비유하시면서 세리들과 창기들이 천국에 가지만 첫째아들인 너희들은 못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종교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들의 편리함입니다.
기독교에는 내용이 있다고 서두에서 말씀드렸는데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예수님이 반대하시고 오직 예수님의 행위로 얻어진 구원의 능력으로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가 구원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로만 충분합니다. 사람이 만든 체제는 필요가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어떤 체제를 만들었을까요? 구원받을 백성들을 7단계로 분류를 했습니다. 1단계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제사장입니다. 2단계는 성전을 관리하는 레위인들입니다. 3단계는 순수한 혈통을 가졌고 할례를 받은 바리새인, 서기관들입니다. 4단계는 레위지파에서 나온 사생아들입니다. 5단계는 다른 신을 섬겼던 이방인인데 개종한 자들입니다. 6단계는 성불구자입니다. 7단계는 저주 받은 이방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눈 체제이기 때문에 이것에 불만을 삼는 것은 하나님에게 불만을 삼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교육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완벽하게 체제를 잘 만들어도 그것으로 구원을 받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 31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라고 예수님이 하필 세리와 창녀를 내세우는 이유가 있는데요.
32절에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바리새인들아 너희가 만들어 놓은 체제를 허물어버리고 세리와 창기의 자리로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뉘우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창기의 자리로 내려오려면 기존의 모든 기득권을 버릴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세리와 창기를 앞세웠던 것입니다.
세리와 창기의 특징은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구원받지 못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리는 세금을 도둑질 한 사람이고 창기는 몸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입니다.
뉘우치지 못한 바리새인들에 비해서 세리와 창기들은 뉘우쳤기 때문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것은 기댈 수 있는 체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기댈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지요. 구박받고 무시당하고 쓰레기취급 받는 사람들이 기댈 곳이라곤 없습니다. 그러니까 체제를 갖출 필요도 없는 이런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면 감사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매춘부이고 도둑인데 이 사실을 모를 때에는 감사는커녕 나의 자리, 이권이 빼앗길까봐 예수님에게조차 대드는 것이 현실인데 주님의 용서하심을 알고 보니 나 같은 죄인은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리이고 창기인 줄 알고 둘째 아들로서 주님께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은혜 앞에는 내 것이라는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