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개인들의 오해(130)
사두개인들의 오해(마22:23-33)(130)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 로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 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 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6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 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 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오늘 말씀은 영생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죽더라도 다시 부활해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부활이 필요치 않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준 거룩한 말씀을 지키면 구원받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부활이 있다면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예가 본문에 나오는데요. 부활이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모세에게 준 계명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둘 사이에 모순점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두개인들은 만약에 부활이 있다면 어떤 모순이 있지 않느냐고 예수님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장남이 자식이 없는 가운데 죽으면 바로 밑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하라는 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식을 낳으면 둘째의 호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죽은 형의 자식으로 호적에 올라가게 됩니다.
이 법이 시형제 결혼법이라는 것인데 신25:5-10에 나옵니다.
‘형제들이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
이 말씀을 근거로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묻기를 7형제가 있는데 맏아들이 장가들어서 자식이 없는 가운데 죽어서 둘째가 장가를 들었는데 또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7형제가 전부 형수에게 장가를 들었다가 자식이 없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활해서 진짜 남편을 누구라고 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사두개인의 입장에서는 부활이 있을 경우에 형수가 한 남자와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무려 일곱 명의 남편을 두어서 누구를 남편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은 모순적인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부활은 필요하지도 않고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말하시기를 본문2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즉, ‘너희들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구나’고 말씀하시는데요.
왜냐하면 30절에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즉, 살았을 때 장가가고 시집가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죽고 나면 의미가 없을뿐더러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진짜 삶은 부활의 삶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된 생명이야말로 산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32절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이 죽은 뒤에 부활시키는 것뿐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살아있을 때부터 부활의 하나님이 동행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있으니까요.
이삭과 야곱도 그들이 살아있을 때부터 늘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처음부터 은혜로 산 것이지요.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가 아브라함이고 이삭이며 야곱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살아있을 때에도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고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롬14: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는 고백이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인생을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면 어려움이 왔을 때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을 갖기 쉽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고 싶은데 왜 도와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은 성령의 권능으로 그 분의 인도하심으로만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고 말입니다.
신명기의 말씀대로 장자가 자식이 없어서 죽고 동생으로 자식을 낳았더라도 장자의 호적에 들어간다는 말은 장자는 죽었어도 살아 있는 것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의 놀라운 진리가 시형제 결혼법에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그 진리를 모르고 있었지요.
바라옵기는 장자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모두 사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음으로 우리의 이름이 그의 호적에 올라가서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음을 믿는 부활의 성도가 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신령한 복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