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메시야 관(132)
잘못된 메시야 관(마22:41-46)(132)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 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 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 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 냐 하시니
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 는 자도 없더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지금까지는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질문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심으로 바리새인들의 사고로서는 도저히 예수님을 믿기가 어려움을 드러내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같은 질문을 오늘 우리에게 하셨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확인하시고자 하신 질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만 오늘 예수님의 질문에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 보는 좋은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이 세상이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문제들을 인간들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메시야가 오셔야만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왜 고통을 당하는가? 왜 죽는가? 왜 만사가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가? 왜 아파야만 하는가? 왜 악인들은 잘살고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소외되어야만 하는가? 등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있지요.
오늘날 신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는 것은 틀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메시야를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야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메시야가 우리에게 던져주신 질문에 대답을 할 줄 알아야 진짜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질문이 본문 45절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다윗부터 예수님까지 약 1000년이라고 보았을 때 다윗의 후손을 ‘주’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씀입니다. 질문 자체가 어려워서 바리새인들 중에 대답을 한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을 통하여 오늘날의 메시야는 너희 쪽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와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나를 위한 메시야’ ‘내가 잘되기 위한 그리스도’를 바라고 믿어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사고를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답을 할 수 있는 사고로 바꾸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 중에 하나가 요1:12-13에 보시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나의 바램이나 나의 소원으로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에 목적이 있고 희망을 가지고 하게 되는데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열심히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수가 있는데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반드시 잘못된 메시야 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나의 인생은 메시야의 능력으로 성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내가 잘되어야 하니까 도와달라고 하는 기도뿐입니다.
심지어 ‘주여 주여’라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기독교식으로 바꾸어서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배를 드려도 내가 잘되기 위해서 드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명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나를 좀 도와달라는 것 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참 메시야를 모르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의 뜻으로 자녀가 된 사람은 자기의 인생은 없고 오직 예수님이 만들어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인생밖에 없음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무게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어요. 내 것이 아님을 아니까요.
다시 본문을 보시면 42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라고 대답을 하자 45절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의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좀 더 쉽게 말씀드린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삭이 아브라함의 주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있어야 이삭이 탄생되는 것인데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사고가 바뀌어져야 하는데요. 아브라함은 이삭이라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먼저 태어나야 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삭도 역시 야곱이라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 먼저 태어나야 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출20:5-6절에 보시면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면 우리의 후손은 누구의 덕으로 복을 받는 것입니까? 우리지요? 후손이 가만히 있어도 복을 받는 것은 우리로 말미암아 자동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그에게 속한 백성은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계명으로 덩달아 복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마1:1-16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는 마리와와 요셉이 있어야 하고 요셉이 있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인 야곱이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해 나가십니다.
역사는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고 있는데 구원의 역사는 이미 완성된 구원이 미래에서 다가오는 방식으로 택한 백성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백성은 장차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등 수많은 백성들이 장차 오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으로 오심을 그들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 역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미리 이 땅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다윗을 그냥 이스라엘 왕으로만 보지 마시고 장차 오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나야 될 인물이 바로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성령에 감동하여 예언하기를 본문 44절에 보시면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이 말씀은 시110편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해석하려면 먼저 이 말씀부터 이해를 하셔야 하는데 하나님의 구원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또 그 아들이 자식에게 이루어지지 않고 왜 반대로 아들이 아버지를 구원하고 손자가 그의 아버지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하시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혈통속에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혈통적으로는 구원이 안 되겠지요? 아버지가 구원 얻었다고 아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마귀가 혈통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은 미래에서 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끊어버리십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가 사람의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날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이삭입니다. 경수가 끊어진 아내가 아들을 낳은 것은 아브라함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을 한 내용이 방금 읽은 44절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당부하기를 ‘사람의 혈통속에는 죄가 들어있는데 혈통을 통하여 일을 하려고 하는 원수를 부수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 내는 일을 십자가를 통하여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혈통이나 육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탄생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다윗이 믿음으로서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주’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중심으로 믿는 예수, 내가 복 받기 위하여 믿는 하나님은 모두 마귀가 만들어낸 메시야입니다.
여러분, 내가 선택해서 만든 예수를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난 것이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삶으로 태어나서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다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동고동락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