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선지자를 죽인 자의 후손(139)

박성산 목사 2018. 6. 25. 14:32

선지자를 죽인 자의 후손

(마23:29-33)(139)

29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 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 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 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 느냐

 

 

 오늘도 역시 예수님께서 강한 어조로 종교인들에게 욕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3절에서 ‘너희가 어떻게 지옥을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너희는 지옥으로 간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누구를 향하여 하신 말씀일까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인데요. 그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기 때문에 욕을 먹고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 때문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으로부터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누군인지 말씀을 통하여 분별하시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의 의가 드러나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입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방향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가 자기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욕을 먹어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내가 나를 옳다고만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음을 아셔야합니다. 예를 들자면 마7:3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에 있는 것이 들보라고 할 수 있는 판단기준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크게 보이는데 막상 자기의 죄는 항상 작게만 보이는 것이 죄인의 속성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죄가 크게 보이더라도 나의 기준으로 볼 때에 작게 보이는 것은 들보라는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의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을뿐더러 안다고 해도 끄집어 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서 ‘저는 바리새인이 아니지요? 저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 아니지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는 저 사람들보다 낫지 않느냐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때에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시고 있습니다.

 

본문 29절에 보시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이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비석을 꾸미는 이유가 뭘까요? 한마디로 신앙이 훌륭한 조상들의 신앙을 배우자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주기철 목사기념관이라든지 한경직 목사의 기념관을 세운 이유도 똑같은 목적으로 세워졌으리라 보는데요. 그의 신앙과 삶을 본받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30-31절에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가 에덴동산에 있었더라면 아담이 따먹었던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거야. 만약에 노아시대에 살았더라면 노아의 경고에 순종해서 방주에 들어갔을 거야. 구약에 많은 왕들이 선지자들을 몰아내고 심지어 죽였는데 내가 만약에 왕으로 태어났다면 선지자들을 핍박하지 않고 죽이지 않았을 거야.’라면서 과거의 죄 지었던 수많은 조상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조상들의 죄를 지적하면서도 자신들의 죄는 덮어버리고 감추는 사람들이 바로 독사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이 보실 때는 과거의 조상들이나 현재의 너희들이나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듯이 죄인은 하나같이 같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롬8:7에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는 육신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깊은 산속에 태어나서 일평생 동안 죄지을 기회조차 없다고 하더라도 육신의 생각을 하는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갈6:8을 보시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아무리 자기를 관리하고 절제하고 자기의 옳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본들 결국 썩어진 것밖에 거둘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육신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고 거룩한 생활을 한다고 해보았자 결국은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육은 육이기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신앙의 선지자들 즉, 이사야, 예레미야 이런 분들의 비석을 세우고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신앙을 본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그 때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핍박할 때에 태어났더라면 자기들은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너희들도 그의 후손임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30-31에서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여러분, 참 선지자는 누구인가요? 예수님입니다. 존경하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비석을 꾸미면서 선지자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마지막 선지자인 예수님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를 죽인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의 판단만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나만 옳다고 판단하면 안되요.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처절하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의 용서함에 참예하게 되는데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시고 두 번 다시 죄에 대해서 묻지 않으신다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롬3:25에서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여러분, 죄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믿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이들과 똑같이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로 나의 죄를 모두 씻어주셔서 주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주시고 있음이 믿어지는 것이 성도들만이 가지는 축복인줄 믿습니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의 복으로 영생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