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정하신 때(148)
아버지가 정하신 때(마24:32-36)(148)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겠다는 마음으로 보게 되면 성경전체를 알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중심을 놓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우리를 위해서 천국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도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다가 가면 되는데 굳이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신다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들어가는 세상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서두에 이 말씀으로 시작하는데요. 성경에는 천국이 임하면 이 세상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세상은 세상대로 있다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세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불에 의해서 소멸되게 됩니다.
벧후3:7에 보시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3:10에도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함으로써 천국백성과 지옥에 갈 사람을 나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이 세대에 구원받을 자기 백성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주님은 오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히9:27에 보시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말씀에서 어떤 기준에 의해서 심판받는가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심판을 면하는가를 보면 될 것입니다. 그 말씀이 히 9:28에나오는데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입니다. 죽는 것이 정해졌다는 것은 심판도 정해졌다는 뜻이고 그 의미는 반대로 예수님을 믿어서 죄가 없어진 사람들도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죽는 것도 정해진 것이고 심판도 정해진 일이고 예수님을 믿어서 죄가 없어진 것도 정해진 일이라면 그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는 것도 정해진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 좀 믿는 것 같은데 다시 한 주가 시작되면 이 말씀은 아랑곳없고 세상살이에 찌들어 살면서 아등바등 사는 자신을 보면 한심하고 미워질 때가 많지요.
사람이 정말 자신이 미워지게 되면 삶에 대해서 별로 애착심이 없어요. 과거에는 오래 살면 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미워지면 하나님이 오늘 데려가셔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흙임을 아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성도가 천국이 세상을 무너뜨리고 소멸시킨다는 말씀에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이 언제 올까요? 세상 종말이 곧 있을 것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이단들은 이것을 미끼로 교인들의 재산을 착취한 예가 우리나라만 해도 적지 않습니다.
본문 3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세대’라는 말은 30년을 말합니다. 결혼을 몇 년 간격으로 하느냐는 의미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30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서 결혼하면 한 세대로 보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지가 벌써 2000년이 넘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려면 무화과나무 비유를 보셔야 합니다.
본문 32절에 보시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사람들은 여름이 오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여름은 누구에게나 오지요. 사업가나 학생이나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름이 오는 것을 왜 모르냐고 하면 자기가 관심이 있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만사 제쳐놓고 여름이 언제 오는가만 기다리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사업가는 사업성장에만 관심이 있고 학생은 공부나 게임에만, 연기자는 연기에만, 요리사는 요리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우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여름이 언제 오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만 관심을 가지는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이 망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니까요.
세상의 종말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중심으로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여름은 무조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봄이 지나면 무조건 오듯이 말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여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종말을 움직이는 세대의 중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름으로 오실 날은 아무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36절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보는 세대관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만 정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와 같은 그때는 아버지의 소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라는 것은 창조 때부터 종말까지의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큰일이 무엇입니까? 사업이 망하는 겁니까?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겁니까? 물질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겁니까? 아니면 불치병이 걸린 일입니까?
그러나 이 일들은 세상이 존재해 있을 때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땅에 발을 딛고 있을 때의 일이잖아요. 낮에는 햇볕이 빛으로 훤히 비추고 밤에는 달빛이 우리의 밤길을 비추고 있을 때의 일이잖아요.
갑자기 땅과 하늘이 종이가 말리듯이 말리면서 불에 타서 없어지면 세상에서 걱정했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일이 진짜 큰일인 줄 믿습니다. 이것을 ‘여름’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를 정하신 하나님만 의지하시면서 여름을 소망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