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달란트를 남기는 종(152)②

박성산 목사 2018. 10. 7. 23:54

달란트를 남기는 종

(마25:14-19)(152)②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 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우리는 지난주에 달란트를 맡은 종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이 다섯 달란트를 남겼더라도 그 모든 것이 주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늘 충성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어차피 내 것을 챙길 수 없는 종의 입장에서는 충성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종은 과연 주인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마25:24-25절에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라고 나오는데 악한 종의 말을 다시 설명하자면 ‘우리 주인님은 무서운(굳은) 분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심지도 않았는데 거두시기도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아주 대단하신 주인님이시고 못하실 게 없는 분이신 것을 압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심어야 거둘 수 있잖아요. 뿌려야(헤치지) 거두잖아요. 심지도 않았는데 거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있는 것으로 심고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심을 것이 없으면 거두는 것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악한 종이 알고 있는 주인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신가하면 심지도 않았는데 거두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한 종의 입장에서는 주인의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의 일만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하나님은 속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은혜만 챙기고 그 나머지는 자기의 삶이니까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된다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실속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현대 종교인들의 모습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살 권리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예수 안에서’ 속죄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서 많이 나오는 내용인데요.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머물기를 싫어하면서도 속죄만 챙기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머물면서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빼앗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본문 28절에 보시면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는 것이 주인의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악하고 게으른 종을 심판하고 정죄하면서 악한 종이 가지고 있었던 달란트를 빼앗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가 아닌 ‘내 안’에 머무는 것은 주인의 마음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가? 에만 관심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나를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이 본성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성된 종은 어떤 사람일까요? 제가 지난주에 종은 자기의 일 외에 주인의 일에 충성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왜냐하면 어차피 자기의 소유가 될 수 없는데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종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길래 충성할 수 있었을까요?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것은 종들이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주인의 선택이었습니다. 주인이 판단해서 재능대로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달란트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가진 재능, 즉 주인을 위해서 사용되어질 모든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그리 해석하니까 자꾸만 내게 있는 것으로 주인이신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말입니다.

 

어떤 이는 물질로, 어떤 이는 몸으로 각각 자기의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달란트를 남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여기에서 사도바울의 고백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후 5:14에 보시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아무런 댓가없이 주신 속죄의 사랑, 주님의 사랑이 강권하시는데 따라서 이제는 나는 죽었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가 자리잡고 있는데 과거에는 나의 것만을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새 것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달란트의 의미는 주인이 종에게 주시는 즉,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주님의 사랑, 구원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달란트를 받은 성도가 어떻게 사는 것이 달란트를 남기는 것이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까요?

시 142:2-3에 보시면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이 말씀은 다윗이 장인인 사울에게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쫓기다가 동굴속에 숨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바로 이것이 달란트를 남기는 것입니다.

 

다윗이 원통함을 당하고 속이 상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충성된 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아주 바르게 살고 말씀대로 살려고 했음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하는 일마다 결과가 좋지 않아서 원통하고 속상한 그 때가 바로 주님 앞에서 충성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살았는데도 마치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는 듯한 삶을 사는 것이 주인이신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십자가에서 죽었던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바르게 살았음에도 하는 일이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지요.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이런 시련과 억울함을 당하셨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값없이 속죄하기 위해서 평생을 억울함과 희생으로 이 땅에서 사시다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 아픔을 함께 이 세상에서 나누는 것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날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일에 참여시켜서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그 일을 통하여, 내게 닥친 모든 일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일임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더위를 주시는 것도, 추위를 주시는 것도, 병들고 늙어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는 이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알기 때문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달란트를 남기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나의 성공이나 나의 실패로 행복과 불행을 삼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계심의 은혜가 있기에 주님을 위해서 주어진 달란트대로 충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성도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통함이나 속 상함이 없이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달란트는 각자 다 다릅니다.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달란트로 행복을 얻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저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본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달란트로 인해 원통해 할 일이나 속이 상할 때에 슬퍼하지 마시고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할 기회인 줄 아시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진정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