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을 깬 여자와 제자들과의 충돌(157)②
옥합을 깬 여자와 제자들과의 충돌
(마26:6-13)(157)②
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 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9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 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 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 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 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 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 하리라 하시니라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세상은 영과 육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육은 육으로 자신의 선을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고 영은 자신이 선을 행할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포기하고 오로지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본문말씀에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선을 행함으로 복을 받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고 육적인 일인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 즉,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 함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한마디로 이미 완성입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육적인 사람은 완성(구원)을 향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기도 하고 자기절제를 통하여 보다 더 나은 사람을 향하여 달려가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미 완성된 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 어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히 10:10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 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4절에도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얻은 거룩함은 누구의 은혜라는 것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이지요.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가난한 자들을 많이 도왔기 때문에 구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그 어떠한 행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도 자체가 완성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이 본문의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것은 정말 헛수고 하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은 여인에게 분노하면서 손가락질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지으면서 ‘혹시 방주를 만들고 나서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지?’라고 의심했을까요? 만약에 의심했더라면 방주를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이면 구원은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니까요.
그러면 이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0-12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여인이 향유를 부은 것은 장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가난한 자들이나 부자들은 물질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부자되게 하더라도 죄는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죄의 해결은 예수님의 장사지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가난하다고 죄를 덜 짓거나 마음이 겸손한 줄 아십니까? 부자니까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나 부자나 하나님보시기에 모두 죄인들입니다.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구원받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야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다리며 그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에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었던 것입니다. 생명은 죽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주신 생명이 있기에 오늘 주어진 일에 감사하시고 모든 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옥합을 주님께 쏟아 붓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