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162)②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마26:44-46)(162)②
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세상과 제자들의 세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합쳐질 수 없어서 성령의 역사가 없이 사람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예수님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팔아먹는 속성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기에게 필요 없다는 뜻이지요.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없는 일입니다.
본문 45절에 보시면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예수님께서 이러한 속성을 가진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죄인들의 손에 팔려가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이제껏 자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자고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밤새도록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 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하셨는데 제자들은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자고 쉬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자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세상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는 일에 있어서 예수님이 홀로 담당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제자들이 자고 쉬어도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실 일이지 제자들이 할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도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살이를 해왔었기 때문에 세상의 실체를 모릅니다. 세상의 본질은 인자의 편에서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에 서로 이해관계로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요?
마 12:28-29절에 보시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이 말씀을 유심히 보시면 예수님이 천국의 백성을 어떤 집에 있는 세간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가구, 냉장고 등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했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냉장고가 스스로 집밖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텔레비전을 설치하면 그 자리에서 치울 사람은 주인밖에 없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은 주인이 마음에 들든 아니든 상관없이 주인의 세간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밤사이에 도둑이 들어서 주인을 꽁꽁 묶어놓고 세간들을 내어 갔어요. 이것은 세상의 주인으로 있던 사탄을 예수님이 오셔서 묶어놓고 세간을 다른 곳 즉, 천국으로 옮겨 놓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식입니다. 성령이 임했다는 말씀은 ‘우리는 세간처럼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는 뜻입니다. 오직 성령께서만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택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간은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막아주고 해결해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그런 분이 아니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천국에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그 분이 주인으로서 세간에 불과한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주인이신 성령님이 혼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경전체의 흐름입니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서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라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사람은 전부 사탄의 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하나님은 사탄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님이고 성경의 하나님과 전혀 다른 우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대학시험을 앞둔 학생이‘하나님, 저 시험 잘 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들어주는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에 응답해봤자 세상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기도할 제목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것은 가져도 걱정이고 안 가져도 걱정이에요. 이러한 세상적인 일에 힘을 주는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으로만 움직여지는 줄로 믿습니다. 구원도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만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혼자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왕상 20장을 보시면 북쪽의 이스라엘이 아람왕인 벤하닷이라는 왕이 이끈 군사로부터 포위를 당해서 멸망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을 대적할 사람을 모아보니까 청년들이 고작 232명이었고 군대가 7000명이었습니다. 숫자적으로는 비교가 안 되지요.
이때에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말하기를 13절에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고 하면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청년들과 군대들이 나가서 싸워 이기자 아람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도망갔습니다. 그 후에 아람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23절에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섬기던 여호와는 산의 신이므로 평지에서 싸우면 이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해에 다시 전쟁을 평지에서 벌이게 됩니다. 성경에서 전쟁직전의 그들의 모습을 27절에 기록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게 함으로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세간이 무슨 수로 집 밖으로 나갑니까? 있을 수가 없는 일이잖아요. 주인이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무슨 수로 땅에 가득한 아람군사들을 이깁니까? 오직 하나님의 능력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고 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구원의 완성하시는 십자가의 길에 제자들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보라’는 것입니다.
45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간으로써 주인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자고 쉬면서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일을 함께 보면서 그 분의 능력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