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중에서 한마디
자아를 두개로 나누는 이유
박성산 목사
2019. 2. 3. 23:08
하나님을 찾거나 선하게 살고 싶은 순간부터 ‘착한 나’와 ‘불만인 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착한 나’는 더욱 착하게 되려고 노력을 하지만 ‘불만인 나’는 감추고 숨기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교회를 찾거나 종교를 찾는 이유입니다.
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착한 본성을 더 갈고 닦아서 해나 달처럼 모든 것을 품고 따뜻하며 여유롭고 푸근함과 별처럼 즐거움을 주는 나를 만들기 위해서 자아를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선한 나는 드러내고 불만스러운 점이 있는 나는 감추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착한 나’는 또 다른 ‘불만인 나’를 억누르기 바쁩니다. ‘너 오늘 누구를 만나면 말조심해. 행동 조심하고... 착한 내가 잘 보여야 되니까. 알았지?’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것은 ‘내가 나쁜 점이 있고 좋지 못한 점이 있더라도 착한 품성이 사실은 진짜 나의 본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를 철저하게 무장한 사람은 심판주가 온다고 하더라도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즉, 착한 나와 불만인 나를 스스로 판단해서 구분을 지어서 착하게 살려고 애를 써왔는데 누가 나를 심판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강해 166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