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게 편지하라(7)
사자에게 편지하라(계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 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오늘부터 일곱 교회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시죠.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사자(angel)’에게 편지하라고 사도요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자라는 말은 메신저이자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신 주님의 모습은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분으로 나오지요. 그 이유는 주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에게만 이 편지가 전달이 될 때에 이해가 되고 믿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외는 편지를 보아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전체를 보시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예수편이냐? 아니냐? 로 나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분 나쁜 일이지요. 사람은 누구에게 속해 있다는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독자적인 자기 영역이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간섭 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주님의 손에 붙잡힌 천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바로 이미 주님에게 속한 교회(성도)가 생겼고 그 교회를 주님의 뜻으로 이끌겠다는 뜻입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걸어 놓은 곳은 많이 있지요. 신학을 전공하고 물질만 있으면 누구든지 사람들을 모아서 운영을 할 수 있습니다만 본문에 나오는 교회는 사람이 만든 교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만드신 교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주도권은 목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말씀만을 전파하는 천사에 의해서만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계 2:5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을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촛대를 옮기시니까 어서 회개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해석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문자대로 이해하시면 그런 설명이 나올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주님의 촛대가 옮겨지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자면 여름에 해변 가에서 텐트를 쳐놓고 온가족이 그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텐트가 날아가 버렸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남 보기가 민망하겠습니까?
교회에서 아무리 감동있는 워쉽을 하면서 찬양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촛대를 옮기시면 아무 의미가 없고 그냥 친교모임 밖에 되지 않고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촛대를 옮기는 것을 우리가 노력을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이해를 하셔야 하는데요. 다시 말씀드려서 촛대가 옮겨지는 것은 우리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붙드시는 교회는 예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일곱 별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별은 하늘에 떠 있는 것이지요. 본래 별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원리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지 사람의 뜻에 따라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만드신 교회는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에게 전달된 편지인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을 읽으시다보면 성도가 위급할 때마다 천사가 찾아오는 장면을 보실 수 있는데 특히 베드로나 사도바울 같은 경우에도 천사가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보호해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는 일은 주의 제자들이 좌절하고 실패하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그때마다 예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힘을 주고 일어서게 하고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행 10장에 보시면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을 천사가 만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백부장인 고넬료가 기도하는 중에 천사가 환상 중에 나타나서 베드로를 초대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그리고 천사는 다시 베드로를 찾아가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을 내가 보내었으니까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촛대가 머무는 성도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도록 천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인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천사는 성도의 모든 삶에 관계를 가집니다. 낮이나 밤에도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따라다니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서 실망하고 힘이 빠져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다시금 소망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천사의 직무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사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요. 롬 8:35-37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말씀에 위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자신의 성공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실패를 할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넉넉히 이기는 것으로 이해하기가 쉬운데 36절을 보시면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사이를 지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뿌리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비록 약하지만 예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세상에서 넘어지고 좌절함을 통하여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천국을 소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행복과 불행함을 통하여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천사는 우리를 어떤 방식으로 이끌고 계실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고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예배의 설교시간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믿음과 소망으로 위로를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신 주님의 뜻으로만 움직이심을 믿어지는 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이 교회인 우리와 영원히 동거동락하며 걸어 다니는 교회로서의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