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 앞에 드리는 면류관(26)
보좌 앞에 드리는 면류관(계4:9-11)(26)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 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 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 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 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 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오늘 본문에 24장로들이 자기의 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천국에 살고 있고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24장로들이 자기의 관을 하나님 보좌 앞에 드린다는 것은 겸손함과 자기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인데 이는 천국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이 땅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너무 아름다운 곳에서 영원히 사니까 너무 행복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자기의 관을 하나님 보좌 앞에 기꺼이 드릴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관은 내가 잘나서 씌워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고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진 것이 모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 분의 것이예요. 이런 신앙으로 살면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보호 차원에서 체면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체면이라는 것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상대방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막에서 지인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하루 이틀 가다보면 지치고 뜨거운 햇볕에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옷차림새를 신경 쓸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인이 나를 어떻게 보던지 간에 일단 살고 봐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를 보호하는 기준이 다 틀린 것입니다. 기준이 없어요. 자기를 보호한다면 그 기준은 스스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가식적인 옷을 입고 있으면서 진짜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역시 거기에서도 자기를 기준으로 삼으며 살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자기체면이나 가식적인 옷을 포기하고 자기의 관을 하나님 보좌에 드린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내 것을 드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드리는 것은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런 곳이 천국일까요?
그러나 지금도 구원받은 백성은 보좌 앞에 자기들의 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얼마나 겸손하고 어디까지 자기를 낮춰야 하나님께 관을 드릴수가 있을까요? 사실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천국에서 24장로들은 우리와 뭐가 달라서 관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고 우리는 아무리 세상에서 겸손하고 자기를 부인하려고 해도 가식이라고 하는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갈 3:10절에서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거룩한 율법 앞에 세워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너희들은 당연히 저주받은 죽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죽은 자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죽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지요. 얼마든지 선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존심과 체면을 내세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죽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의 관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까워서 어떻게 드립니까? 평생동안 자기의 눈물, 땀, 수고로 일궈낸 열매의 관을 어떻게 드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내가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조리 자기의 것을 챙기고 싶어 하지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얼마나 능력이 대단한지 죽은 자를 살립니다. 그렇게 산자를 성령 받은 성도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를 마음껏 찬양하라고 오늘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것이 처음부터 없음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보좌에 관을 드리는 삶을 사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