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인(31)
다섯째 인(계6:9-11)(31)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 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 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 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 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오늘은 다섯째 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인이라는 것은 ‘인봉했다’ ‘도장을 찍어서 봉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열고 싶어서 마음대로 열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7개의 인을 가지고 세상을 종말까지 운행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미 확정된 일이 세상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인이 없지요. 그러므로 사람들의 뜻과 하나님의 뜻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7인에 대해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무슨 뜻인지 그리고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오늘은 다섯째의 인을 예수님이 떼실 때에 그동안 감추어진 성도의 삶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세상에 사는 동안 고난과 핍박으로 죽임을 당했는데 불신자들을 심판하심으로 성도들이 옳았다고 판가름을 빨리 해달라는 요구에 하나님은 그 수가 차기까지는 계속 성도들은 세상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9절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복음과 십자가를 의지하는 증거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육신의 생명과 영생을 맞바꾸는데 부르심을 얻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휴대폰의 신제품이 나오면 기존의 제품들은 뒤로 밀려나서 나중에는 단종이 되고 맙니다. 옛 것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와같이 영적인 성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목숨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영생과 맞바꾸는 것임을 압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보다 훨씬 귀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나의 생명에 대해서 연연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수많은 믿음의 조상 중에서 아브라함과 마리아의 예를 들고 싶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하게 키웠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자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리아산에 자식을 바치라고 하실 때에 기꺼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에 이삭을 자기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제물로 이삭을 바칠 수 없었겠지요.
바로 이것이 성도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일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요셉의 정혼자인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입니다. 어느 날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와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마리아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뜻을 이루실 것을 알았고 태아는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영생을 주실 분이라는 증거를 얻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을 통해서 얻은 자식이 아니라 다른 씨를 잉태했기 때문입니다. 법에 따라서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지요. 간통은 사형이니까요.
하지만 믿음을 가진 마리아는 자기 목숨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뜻이 자기로 인해 이루어진 자체만으로 대단히 영광스러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자기의 목숨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성경에는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죽음으로 가는 생명이 있고 죽음에서 나온 생명이 있습니다.
롬 3:19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심과 같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바울은 롬 3:21-22절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보시면 율법 이외에 한 의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담당하셨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영생은 하나님이 죄인을 죽일 수 있는 것과 같이 죄로 인하여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의 의되시는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증거를 남기면서 사는 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죽음의 삶으로 말입니다. 세상은 성도를 무시합니다. 비웃습니다. 손가락질을 합니다. 성도는 그렇게 살다가 가야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자이고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간청을 하지만 하나님은 수가 차면 심판할 것이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 좋을대로 선택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만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심판 날에 우리가 옳은 길로 갔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