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더니(37)
고요하더니(계8:1-6)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 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 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 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 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도는 계12:11절에도 이들이 나오는데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성도들의 기도는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적어도 이 땅에서 좀 더 잘살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아닐 것입니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죄인인 저를 통하여 주님만을 드러내기 위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 달라’는 뜻에서 올리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는 것은 신앙이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큰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지금의 목숨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들을 가리켜서 죽음을 이긴 자, 성도라고 합니다. 이들의 기도가 천사의 손에 의해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 1절에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잠시 동안 고요하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고요한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 간섭을 받는다거나 누구로부터 방해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서 심판하시고 주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는 성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잠시 그들의 기도를 듣는 중이기 때문에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요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그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고 함께 고난받고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피의 은혜를 증거하는 증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서 감히 누가 설자가 어디 있으며 방해를 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합 2:20절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심판할 자와 구원할 자를 구분해서 행할 테니까 누군가 중간에서 나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손 들고 ‘주여’를 삼창해서 제발 육신의 일을 도와 달라고 하지 말고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제발 하루빨리 물러나게 해달라고 해봤자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지 그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코로나를 주신 분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시작하신 분이 끝도 그 분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까? 교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다보니까 하나님의 뜻은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 분들이 조금만 불편해도 그 불편을 빨리 해소해 달라고 부르짖는다면 이게 무슨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고요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책임지고 데려가십니다.
요 17장에 보시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를 하시는데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라 아버지의 백성을 위해서 온 것인데 그들을 위해서 죽겠습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나오는 대목이 요 6:37-39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런 기도를 하실 때에 제자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잠자기에 바빴고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혼자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고요합니다. 사람들이 그 중간에 끼어들면 그때부터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히 5:7-9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으로 자기백성의 죄를 다 짊어지고 대신 저주를 받아야 하는 그 길로 가신 것입니다. 조용하게 말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드렸을까요?
‘죽지 않고 다른 방법이 없나이까?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라면 쓴 잔을 마시겠다’고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조용하게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지옥에 가도 마땅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 우리를 누가 구원하셨나요? 오직 우리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은 성도의 기도의 응답을 이렇게 하신답니다. 본문 5절에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 말씀은 이 세상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심판의 우레와 음성과 지진으로 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고요하게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일을 준비하지만 성도는 이미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기도하며 순종할 뿐입니다.
고후 5:8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이러한 복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