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의 외치는 소리(39)
독수리의 외치는 소리(계8:12-13)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 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 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 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그 누가 막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고 싶어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심판하고 싶어서 세상을 끝내겠다고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성도는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는 일에 그저 순종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바쁘지요. 나를 왜 이렇게 가만 보고만 있냐고.. 내 뜻대로 인생이 왜 안 되느냐고.. 이대로는 그냥 살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만드셨고 심판하시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본문에서도 독수리가 땅에 살고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막을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저주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세상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롬 8:24절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소망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더 많이 가지게 해달라고 저주를 퍼붓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할 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는 순간 그때부터 불평과 불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만족을 주지 못해요. 뭔가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욥 1:21절에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세상에 살면서 두 손 탁탁 털고 언제든지 일어나도 된다는 자유스러움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서 참으로 불행한 것은 집착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독수리가 나오는데 마 24:28절에 보시면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주검이라는 말은 시체라는 말입니다. 독수리가 모여 있는 것을 보면 그곳에 시체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시체로 가득 쌓여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이 말씀은 그동안 해와 달과 별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모든 혜택이 중지될 것임을 천사가 나팔을 불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13절에 독수리가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저주, 저주,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계 6:16-17절에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어린 양의 진노’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진노의 자식들은 양심껏 열심히 살았지만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심판이 이르렀을 때는 진노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써보더라도 전혀 소용이 없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 1:2-4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행악의 종자와 부패한 자식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버렸다는 의미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의미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는 것임을 믿지 않고 자신의 의, 섬김, 봉사 등을 내세워서 천국에 가고자 했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린 양이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그 심판이 두려울까요? 아니면 기다려질까요?
사 40: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독수리 같이 하늘에서 이 땅을 보면 훤하게 다 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세상을 보면 욕심이나 집착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이 진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으로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