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해산하려는 여자와 용(52)①
박성산 목사
2021. 3. 29. 12:46
여자와 아이와 용(계12:1-4)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 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 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 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 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러분이 성경을 보시면서 세상의 끝을 보실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성경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안의 세상이 끝나면 이 세상도 함께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세상의 끝을 보셨다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준비만 하시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끝을 미리 보시게 함으로 비록 지금은 힘들고 고난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세상의 끝이 있음을 안다는 것을 복 인줄 아시고 귀하게 여기셔야 할 줄 압니다.
오늘 본문에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오지요. 해를 옷 입은 여자가 나오고 붉은 용의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고 머리마다 왕관을 쓰고 해산을 앞두고 있는 여자를 괴롭힌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여인과 용의 싸움에 관여를 하거나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자는 우리가 응원을 한다거나 용과의 싸움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그냥 지켜볼 수밖에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것인가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인가라는 문제도 관여할 일이 아님을 아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육을 입고 있는 이상 죄에 대해서 절제할 수도 없거니와 악을 이기겠다고 버텨봤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 죄인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이 참는다고 죄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남이 우리 자식에게 해를 가하다면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용서를 해야 한다구요? 마음에는 화가 나지만 참으면서 말로만 용서한다고 용서가 될까요?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친 그 일이나 사람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면 용서가 가능합니다만 상처를 준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억상실증이 아닌 이상 용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본성이 신앙을 가지게 되면 인격이 변한다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신앙의 목표를 죄 덜 짓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점점 성화되는 것을 신앙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시면 성경의 믿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반 종교와 같은 것입니다.
신앙은 성화되어 가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용서하시는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시 90:14절에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는 매일같이 죄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신 주의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지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말씀보는 시간이고 그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예배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도 역시 본문을 그런 시각으로 보시면 됩니다. 본문에 한 여인이 아이를 낳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아기는 엄마만 있고 아빠는 보이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아빠없이 태어난 아기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빠없이 태어난 아기여야만 구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빠도 죄인이니까 죄인의 씨앗으로 잉태되고 태어난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사람의 씨앗으로 만들어진 생명은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빠없이 태어나셨지요.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동정녀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분이 사람의 씨앗으로 태어나는 것은 이미 구세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령으로 잉태된 사람만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질서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아빠없는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연예인은 정자은행을 통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그 또한 아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아기의 특징은 본문 4절에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라고 나오는데 사탄이 삼키려고 하는 공격을 당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기가 있는 곳에는 항상 사탄이 자리잡고 있고 사탄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는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기를 낳은 여인은 누구일까요? 본문 1절에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머리에 열두 별의 관을 쓴 것을 보면 아주 귀한 신분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분이신가하면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머리에 쓸 정도로 귀하신 분인데 이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신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엄마의 신분이 귀하니까 자식도 귀한 신분으로 대접을 받지요. 그러니까 아기는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엄마가 어떤 신분이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갈 4:24-28절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이 말씀을 보시면 여종인 하갈로 통해서 태어난 아들은 육체로 태어나서 종 노릇을 할 수밖에 없고 약속을 따라서 난 아들은 하늘에 속한 어머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유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법을 따라야 하고 땅에 속했기 때문에 죄의 종으로 살다가 저주를 받고 말 것이고 자유자는 이미 하늘에 속했고 약속의 자손이기 때문에 자유함으로 의의 아들로 살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의 신분이 하늘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머리에 쓴 면류관이 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면류관은 영광을 상징하는데요. 전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주는 상이 면류관입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누군가와 전쟁을 해서 이겼기 때문에 승리자라는 증거로 하나님이 열두 별의 관을 씌워주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