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아들을 가진 여자(56)②

박성산 목사 2021. 8. 9. 12:19

아들을 가진 여자(계12:13-17)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 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 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 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 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 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 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우리는 지난주에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영적인 세상인데요. 용이 여자를 계속 쫓고 있는데 아들을 낳은 여자는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아들을 낳았다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뒤따라가는 자들을 남은 자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자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시간을 역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은 자손들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되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 보시면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이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마태복음을 보셔야 합니다. 마 2:13-21절에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고 난 후에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하니까 애굽으로 피하라고 전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합니다.

 

그로부터 약 2년 후에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근처에 있는 아기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장차 왕이 될 아이가 누군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죽임을 당한 아기를 붙잡고 우는 여자들의 슬퍼하며 애곡하는 소리가 온 땅이 진동하듯 울려 퍼졌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예수님과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유 없는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남은 자손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자를 독수리의 두 날개로 인도하신 곳이 ‘광야’라는 곳입니다. 광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출 19:4절에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써서 자기들의 힘으로 가나안으로 간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업어서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바로 광야라는 것입니다.

 

신 8:2-4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내 것이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머물 곳도 없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신다는 의미는 인격적으로 겸손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광야에는 물이 없고 양식이 없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주시면 주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하늘에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만 생명을 이어갔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아야하는 그 장소가 바로 광야입니다.

 

본문에 광야에서 견디는 기간이 나옵니다. 14절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라고 나오는데 이를 굳이 일년, 이년, 반년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기간의 의미는 광야에서 견디는 기간이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양육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인내하면서 그 분의 뜻에 맡기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말로 행복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한평생을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는 고난이라고 합니다.

 

용은 그 고난에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용이 아무리 우리를 영적으로는 율법을 앞세워서 법을 지켜야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유혹하기도 하고 협박을 하며 육적으로는 내가 계획하고 소망한 것들이 모조리 무너지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성도는 끝내 견디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곳이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천국이 아니에요. 편안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광야는 우리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독수리의 두 날개로 업혀서 지나가는 곳이니까 우리는 단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면 될 줄 믿습니다.

 

광야는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야 하는 곳이니까요.

 

이 복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