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심판을 받는다는 것(62)

박성산 목사 2021. 10. 3. 22:03

심판을 받는다는 것(계14:6-7)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오늘 본문에는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천사가 심판의 시간이 가까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함으로써 그 소식을 들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천사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작정하신 심판의 날이 가까웠는데 이것을 피할 자가 한명도 없을 것이다.’고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라는 말씀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심판 날이 가까웠다는 관점으로 이 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릴 때에는 심판에 이르렀음이 믿어지는데 교회 문만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그 이유는 사탄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관심없게 하려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4:4절에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이 천사가 심판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외치는 소리에 귀를 막게 하고 눈을 흐리게 해서 마치 황사처럼 온 세상을 혼미케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심판이 있다는 말을 싫어하고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인데 반대로 심판이 없다는 말은 누구에게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뭔지 아십니까? 남들의 비난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가장 두렵지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세요. 이보다 더 두려운게 있는가 말입니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어떠한 비난이 들려와도 신경 쓰지 않으면 됩니다.

 

어떠한 비난이 들려와도 그냥 수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살면 그처럼 편한게 없어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심판 날이 가까웠다는 말씀 앞에 외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 성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 8:3-11절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백성에게는 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비난받지 않고 모든 죄를 덮어주는 그 사랑을 받았다면 비록 죄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법대로 하면 간음을 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간음을 한 여인이 주님에게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용서받은 그 여인이 주위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 이상 두려워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마귀는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가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양심을 이용하여 스스로 용서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시 51: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이 시는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을 해서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 하였다고 합니다.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 장군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뜻일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죄는 다윗이 주님에게만 범죄를 했고 사람에게는 죄가 성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우리는 죄를 짓고 나서 남에게 비난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피해자에게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것은 나의 양심과 윤리와 도덕을 앞세워서 지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형을 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내가 실수로 죄를 지었지만 뉘우치고 반성 을 했기 때문에 다른 말로 죄의 대가는 치루었기 때문에 죄를 짓기 전의 나로 돌아가려고 하는 나쁜 본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죄라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용서와 관계없이 죄 지은 것을 스스로 갚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기만족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만 범죄 하였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범죄한 것을 안다는 것은 심판을 느낀다는 것인데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용서와 사랑을 다윗은 분명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아는데 이러한 주의 백성과 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심판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과 심판받을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를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이 외침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