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산 목사
2021. 11. 15. 13:37
연기가 가득 차매(계15:5-8)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 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 가 없더라
지난주에 성도는 망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사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렸고 전혀 손해되는 일이 아니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듣기가 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면서도 여러분이 지금까지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배시간에 설교를 통하여 늘 나누었던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선택해서 되어지는 인생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안정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5-6절에 보시면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성전이 열리며 일곱 천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에 재앙을 내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재앙을 받게 된다는 뜻인데 이 말씀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서도 아니고 국회가 법을 잘 만들어서도 아니라 그들은 사람이잖아요. 세상은 사람이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욥이 아들 일곱이고 딸이 셋이 있어서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았더라고 욥기 1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열 명의 자녀들이 하루에 다 죽어요. 그 많은 재산도 다 없어지고 맙니다. 흔치 않은 일이지요. 이런 저주를 당한 욥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욥 38장에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욥은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은 단지 티끌에 불과하고 망해야 하는 존재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욥의 자녀와 물질을 주었다가 빼앗아 가신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던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해왔던 것이라는 것을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모든 것을 잃는 경험을 해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찼고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신가를 아셔야 합니다.
출 40:34-38절에 보시면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회막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회막 위에구름이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회막입니다.
그러면 무슨 방법으로 성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들어가게 해주는 무리들이 있는데 바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만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무슨 수로 사람이 홍해를 가를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만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잘나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롬 3:23-25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심으로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예수님의 피를 흘리심으로서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하십니다.
피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셔서 그 대가로 우리가 산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줄 믿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는다는 것은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성도는 주님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지요. 지금 당장 힘든 일이 있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힘이 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게 하십니다. 욥처럼 말입니다. 욥이 자식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죽을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하면 될 거야”라고 믿었던 일을 모조리 부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린 양의 노래의 주인공이신 주님을 보고 싶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보고 싶냐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도 만나야 될 분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이 땅이 아닌 하늘에서 나를 기다리는 분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낮은 마음으로 주님만 보고 싶어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