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76)
박성산 목사
2022. 1. 31. 18:43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계18:7-10)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 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 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 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 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 다 하리로다
오늘도 바벨론이라는 큰 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본문 5절에 보시면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라고 나오는데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데요.
죄를 지으면 그 죄가 이 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쌓이게 되어서(piled up) 심판까지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생각하는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만 죄일까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벧전 4:11절에 보시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만약에 여러분이 지하철 앞에 있는 노숙자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서 뿌듯함을 느꼈을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요 21:18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 마음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고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지도자가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자기의 뜻대로 간섭하심으로 운행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자기 잘난 맛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그 죄 값으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간섭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죄입니다. 왜 간섭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모르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요 21장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원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고 나서 어부로 살겠다고 뜻을 정하지만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의해서 베드로의 뜻이 완전히 무너지고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다가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했습니다.
골 1:16절에 보시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세상은 예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누구에 의해서 창조되었을까요?
누구를 위해서 창조된 것일까요?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적과 뜻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간섭이 중요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간섭하셔서 나의 뜻과 목표를 부수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가 믿는 자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끝까지 자기의 고집을 내세울 것이고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한다고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괴롭지만 하나님의 뜻을 순응한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무슨 자기의 고집을 내웁니까? 곧 심판받을 인생이 무슨 목표가 있습니까? 버려야 합니다. 포기하셔야 되요. ‘그래도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고백이 성도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본문에 나오는데 본문 9절에 보시면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라고 기록하였는데 이 말씀은 음녀인 바벨론 성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깝고 슬퍼서 세상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운다는 것입니다.
붙에 타서 심판을 받는 이유가 나오는데 음행하고 사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음행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 세상과 짝을 이루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음행은 반드시 사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간섭을 피해서 자기만족을 위하여 음행하고 사치한 모든 것을 하나님은 불에 태울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는 기준은 이웃입니다. 이웃이 잘살면 나도 잘살고 싶고 좋은 아파트에 살면 나도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싶어합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하다싶으면 왠지 주눅이 들어서 실패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을 의식하는 성도는 자유자입니다. 이렇게 살던, 저렇게 살던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고 있는데 이웃이나 친구들이나 형제들이 나를 어떻게 보던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은 나를 위해서임을 믿는다면 비록 불편하고 괴로운 삶일지라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그 뜻대로 인도하심을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