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맷돌 같은 세상을(78)
박성산 목사
2022. 2. 13. 22:26
맷돌 같은 세상을(계18:20-24)(78)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 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 더라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 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 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 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 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 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 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 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 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 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본문에 보시면 천사가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맷돌 소리와 함께 여러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보여지는 것이 있는데 본문 22-23절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세공업자..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들려지고 보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잔칫집을 연상케 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들리는 것을 보니까 결혼식이 떠오르지요.
거문고나 퉁소나 나팔은 잔칫집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악기입니다. 세공업자는 신랑과 신부를 위해서 귀금속을 깍거나 다듬는 사람을 말합니다.
축하하는 소리, 흥겨운 악기 소리, 사람들의 웃는 소리는 참 행복한 소리입니다. 꿈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은 희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천사가 맷돌을 바다에 던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만약에 무엇을 많이 가졌다고 만족하거나 마음이 빼앗긴다면 천사가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때가 있음을 잊어버리는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꿈을 이루면서 만족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갈증에 메마른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 다시는 들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잔칫집과 같은 세상에서 흥겨운 악기소리에 마치 자기가 신랑이나 신부가 된 것처럼 행복의 웃음소리가 나온다면 천사가 그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잔칫집보다 초상집이 낫다고 말합니다. 전 7:2절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초상집에 기분 좋게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초상집에서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자기도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미래의 자기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본질에 가까워집니다. 젊었을 때는 자기 잘난 맛으로 살기 때문에 잘 모르지요. 흰머리가 나고 기운이 빠지는 나이가 되고 병이 들면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낯설고 두렵습니다. 한 번도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몸은 거추장스러운 껍질에 불과합니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아프면 병원 가야하고 남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쌍꺼풀 수술해야 하고 더우면 벗어야 하고 추우면 껴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으면 이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결국 가야할 자리는 무덤이라는 곳이 최종 목적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칫집보다 초상집이 낫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죽음을 까맣게 잊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웃고 우는 소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바다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면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 28:15-19절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계명을 못지키면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십계명대로 사는 사람을 보셨나요? 1계명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을 혹시 보셨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시는 분은 예수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못 지켜요. 그러니까 당연히 저주를 받아야지요. 무거운 맷돌에 의해서 바다에 던져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갈 3:13절에 보시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율법은 완전한데 죄인이 무슨 수로 법을 지킬 수 있을까요? 만약에 율법이 완전하고 거룩하고 선한데 죄인이 지킬 수 있다고 한다면 율법이 온전하다고 볼 수 없겠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죄인이 의인이 되고 저주에서 벗어나서 긍휼을 입었다는 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복을 받은 자들이 본문에 나오는데 본문 20절에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성도는 하나님이 세상을 바다에 던지시는 심판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어차피 세상은 잔칫집이 아니라 초상집이고 저주를 받아야 될 맷돌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람으로 세상을 바로 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