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신지라(79)
박성산 목사
2022. 2. 27. 22:33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신지라(계19:1-3)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 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세상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 발자국씩 흔적을 남기면서 인류의 역사는 발전되어 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이것을 연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 의해서 세상 역사는 움직인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늘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오늘 기분 좋다가 내일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속상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과 로봇이 대화를 하고 하늘을 나는 택시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모두 육에 속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육의 한계를 육으로 뛰어넘을 수는 없지요. 죄를 저지를 수는 있어도 죄를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입은 영광보다 들풀이 나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영적인 세계에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면서 일을 하십니다.
어린아이가 농사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90세 노인이 쇼트트랙을 어떻게 타겠습니까? 죄인이 의의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육의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 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 이름 이외에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이 땅에 오실 때는 소수의 무리들, 즉 동방박사와 이름 없는 목자들과 안나 선지자만 영접했습니다. 왕으로 오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왕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 53:2-3절에 보시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메시야라고 볼 만한 외모도 아니고 권세나 세력이나 영광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세리들과 창녀의 친구로서 살다가 비웃음과 침뱉음과 손가락질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누가 이런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차라리 강도인 바나바를 원하지 예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원과 영광과 능력의 심판주로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심을 성령을 받은 자들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 사람들이 미워하고 무시하고 비웃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는 것이지 사람들이 원하는 화려함과 영광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받고 믿음이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왜 예수님보다 더 높아지려고 하고 많이 가지려고 하고 자기 이름을 떨치려고 할까요?
고후 11:4절에 보시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나 복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본능에 따라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있고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관심이 없고 이왕이면 큰 교회, 이왕이면 인격이 훌륭해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한 목사, 설교할 때 죄나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말씀보다 축복을 많이 빌어주는 목사, 사회에 봉사를 많이 해서 이웃에 칭찬받는 교회를 찾아 헤매고 다닙니다.
복음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신자들이 설교를 들을 때마다 진짜 예수를 증거 하는지, 십자가를 증거 하는지에 대한 분별이 전혀 없는 고린도 교회와 똑같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고후 11:13-15절에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가짜 예수, 가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자들이요 사탄의 일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일꾼이 일하는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복음만을 증거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왜 모이지 않을까요?
그것은 육에 얽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행복, 건강, 장수, 성공은 전부 육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이런 복을 받으라고 하니까 좋아할 수밖에요.
그러나 복음은 영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야 복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들을 귀와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이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음을 믿을 것이고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 6: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