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심판주이신 예수님(82)

박성산 목사 2022. 4. 3. 20:24

심판주이신 예수님(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 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 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 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 주의 주라 하였더라

 

 

 

 오늘 본문에 백마를 탄 자가 나오는데 눈은 불꽃같고 머리에 많은 면류관을 썼고 옷에는 피가 묻어 있고 입에는 예리한 검이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심판주이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고후 5:10절에 보시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우리가 반드시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요?

 

심판이 있음을 믿는다면 세상의 행복한 일이나 불행스러운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그리 큰 문제로 여겨지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는 언제 어떻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기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에 공무원 시험을 내일 치루는 취업준비생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평소에 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기도는 물론 성경도 매일 3장씩 읽었던 사람입니다.

 

그동안 7번 떨어져서 이번에는 무조건 합격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원할까요? 아니면 합격하도록 도움을 주시는 예수님을 원할까요?

 

성도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성공하는가 아니면 실패하는가에 대해서 그리 민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판대 앞에서는 성공이나 실패가 심판의 결과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여러분이 복 주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살이에 두려움이 별로 없어요.

 

방금 말씀드린 시험준비생이 만약에 공무원에 합격했으면 그 뒤로는 걱정거리가 없을까요? 어차피 인생은 걱정으로 시작해서 걱정으로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저 산을 넘으면 이제는 편히 쉬겠지 하다가 넘고 나면 산이 또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언젠가는 걱정거리 없이 살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지만 그 또한 부질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판을 우리가 믿는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당황하거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주님 앞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심판주이신 예수님의 옷에 피가 묻어 있다고 합니다. 본문 13절에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63:2-3절에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1절에 보시면 에돔에서 주님이 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가 세운 나라이니까 저주받은 백성이지요. 예수님이 에돔을 짓밟았는데 그 피가 튀어서 옷에 피가 묻어서 더럽혀질 정도라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를 짓이기듯이 밟으면 시뻘건 즙이 사방으로 튀듯이 우리 주님이 저주받은 백성을 발로 밟듯이 심판하시는 심판주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시고 심판주이신 예수님이 세상에서는 왜 힘이 없고 연약하고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모습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처음부터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오셨더라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을 것인데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보다 잘났고 내게 복 주는 예수를 원하지 나보다 못한 예수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는 이유도 내가 원하는 예수를 믿어서 덕을 보고 싶은 이유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을 은혜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16:1절에 이와 같은 이들이 나오는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진짜 메시야인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그러자 예수님이 4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마다 아담이 따먹은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 그 자손들도 똑같은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각자 신을 섬기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의 이름은 자아입니다.

 

3:5절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유혹에 그만 따먹고 나를 챙기고 섬김을 받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신으로 섬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창조주이신 하나님조차 아예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자기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 것이 종교입니다. 정성을 바칠 테니까 당신도 나를 위해서 복을 주고 소원을 들어달라는 거래를 합니다. 나를 섬겨달라는 것입니다.

 

종교라고 해서 기독교나 불교나 이슬람, 천주교만이 아니라 나를 섬기는 방법이라면 모두 종교입니다.

 

과거에 택시 운전사들이 아침에 첫 손님을 남자만 태웠습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시합 전에 면도나 머리를 절대 깎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새해가 되면 꼭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고 문제만 생기기만 하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개업을 하면 돼지머리에다 절하고 돈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 모든 것들이 종교 행위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오고 가는 모든 세대가 똑같습니다. 이들은 자기를 섬기는 것이라면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모습은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한없이 약하고 가난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그를 심판주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를 신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가서 만난다면 그 예수는 나를 위한 예수일 뿐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면 그동안 섬겼던 나라는 신을 섬기기 위해서 온 정성을 쏟아온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부끄러운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18:13절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제서야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당장 지옥에 가더라도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죄인에게 주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사 1:18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예수님이 나에게 죄인이라고 하시면 그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나를 섬기기 위해서 열심히 애쓰고 살아온 것이 헛된 일임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죄인의 마음속에 가득 차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백마를 타시고 눈은 불꽃 같고 많은 면류관을 쓰고 입에서는 예리한 검이 나오는 그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심을 믿는 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