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85)
박성산 목사
2022. 5. 15. 23:36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계20:4)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 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 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마 13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해서 알곡은 창고에, 가라지는 불에 태운다는 내용이 나오고 마 25장에는 양과 염소를 나누시고 양은 영생을 주시고 염소는 영벌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둘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 기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둘 중에 하나를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구분하신다는 의미는 우리의 선택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천국에 가는 것도 중요한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죄인들은 참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본문을 통하여 세상을 둘로 나누신 하나님의 시각에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천 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아셔야 하는데 이 천년은 이미 완료된 시간입니다. 다른 말로 확정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변하지 않고 내일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행복하다면 내일뿐 아니라 천 년 동안 그 행복이 지속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안정감이 있지요.
그런데 세상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고 정치나 경제는 수시로 바뀝니다. 바뀐다는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진행 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변한다는 것은 미완성, 다른 말로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시간입니다. 늘 불안하지요. 오늘 행복하다고 해서 내일의 행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더 많이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각자의 입장에서 시간의 빠르기가 다릅니다. 노인은 시간이 좀 천천히 가기를 바랄 것입니다만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에게는 빨리 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은 나 중심의 시간을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서, 내일도 나를 위해서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 시간이 세상을 파고들어서 어떤 사람에게 임하게 되면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자기의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어떤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가 하면 본문에서‘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이 나오는데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빼앗기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잖아요. 성공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것도 자기 생명의 존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먹거리를 찾아다니거나 운동하고 건강식품을 챙기는 모든 이유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의 목숨을 잃게 하신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지요.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을 주셔서 성공하게 하신다든지 남이 부러워할 만큼 높은 지위를 주시기는 커녕 예수님을 증거하는 제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 그 영혼은 그동안 자기가 바라는 세상의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 확정되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주님을 증거하는 재료로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벧후 3:8절에‘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이 말씀은 성도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같은 시간대에 적용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은 하루에 불과합니다. 너무 짧은 시간이지요. 천 년에 비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은 허비하기에 바쁩니다.
자기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같은 시간을 성도를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거물로 삼아서 왕 노릇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를 중요하게 여길 수가 없습니다. 사실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만큼 가벼운 것이 없지요. 자기 인인생에 부담을 가지지 않고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요?
세상 일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감사하고 기뻐하게 된다면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자기의 뜻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천 년이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시간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