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의 복(86)
박성산 목사
2022. 5. 23. 11:35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의 복(계20:5-6)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세상은 교회가 외친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사람을 태어나게 하고 죽게 하는가에 대한 세상의 근본이 말씀안에 있다는 것보다 실제적인 것은 없습니다.
어디서 태어났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근본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실제라고 믿는 것은 꿈속에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만 용서를 받고 천국에 간다는 실제를 말씀이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 5:28-29절에‘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무덤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허구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나온 말입니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의 끝에 서서 사셔야 합니다. 왜냐면 부활은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지나야 만나는 것이니까요.
성도는 세상에 너무 정 붙이면서 살 필요가 없어요. 내가 바라고 있는 것들을 가져보았자 기쁨도 잠시이고 만족감도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신혼부부도 아무리 사랑해봤자 6개월이면 시들해집니다. 50평짜리 아파트를 사더라도 1년쯤 지나면 넓다는 것을 못 느끼게 마련입니다. 끝없이 허무를 느끼고 또 다른 자극, 욕망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죽음앞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관심은 어떤 목적을 두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서 집중되어 있습니다. 삶의 근본을 모른채 말입니다.
골 1:16-17절에‘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모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통치되고 있고 예수님에 의해서 우리도 이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근본입니다.
부활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에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 놀라운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감싸서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는다면 여러분 자신을 근본되시는 예수님에게 삶과 죽음까지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애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드신 예수님이 지금까지 함께 하셨고 그 분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데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 걱정한다면 아직 부활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본문 5절에‘(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라는 말씀에서‘천 년이 차기까지’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그 시간까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마 12:20절에 보시면‘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이길 때까지’라는 말씀은 심판 때까지 하나님이 기어이 무슨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인데요.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만들어 내시는 분으로서 천년이라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구원도 하시고 심판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 백성으로 만들어 내시고 심판받을 백성은 반드시 저주받게 하겠다는 것이 ‘천 년이 차기까지’‘심판하여 이길 때까지’의 뜻입니다.
이어서 6절에‘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라는 말씀은 반드시 복 받을 자는 하나님이 복 받을 자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 복을 받기 위해서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실제입니다.
이 실제를 경험한 성도는‘주여, 제가 이런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믿으며 고백할 것입니다.
반대로 허상을 쫓는 사람들은 자기로부터 시작합니다.‘주여 꼭 복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무엇을 해야 복을 받겠습니까?’라고 하면서 복을 받는 것은 자기가 뭔가 부족했기 때문에 못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이미 죽은 사람으로 보십니다. 자기들은 산 사람으로 보겠지만 하나님은 사망에 속한 사람들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 끝날까지 죽은 채로 있다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왜 사는지, 왜 죽는지, 왜 늙어가는지, 왜 병들어가는지, 죄를 지으면 자책감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된 성도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믿는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된 성도는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이러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데 부활의 세계, 죽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사는 세계로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있음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죽음도 없고 아픔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나 같은 죄인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나보다 먼저 계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함께 거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