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천 년이 차매(87)

박성산 목사 2022. 5. 30. 13:38

년이 차매(20:7-10)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 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 으리라

 

 

 

 본문 10절에 보시면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둘째 사망이라고도 하고 지옥이라고도 합니다. 이 둘째 사망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도 지옥을 향해서 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이라는 것이 에덴동산에서는 원래 없었던 것입니다. 죽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죽으니까 죽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만 죽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첫째 사망도 있고 둘째 사망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에 첫째 사망만 있다고 한다면죽으면 그만이니까 늙어서 죽으나 지금 죽으나 똑같은데 괴로운 세상 빨리 떠나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철학자나 문학가나 예술가들이 자살을 많이 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들뢰즈, 헤밍웨이 등등이 있고 국내에는 마광수, 기형도 등등이 있는데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둘째 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죽을래야 죽을 수 없고 산 채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물 한 방울이 아쉬워서 괴로워합니다. 이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고 희망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게 하는 무리들이 있는데요.

4:1-8절에 보시면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사라의 죽은 태에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믿지 못할 일이 믿어지는 복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얻은 거예요. 그는 의롭다함을 받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믿어지니까 믿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를 얻은 것입니다. 이것을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성도는 둘째 사망에 대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범위안에 둘째 사망이 성도를 삼키지 못하도록 막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16:15-18절에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에 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못한 백성이 본문 8절에 나오는데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천 년이 차서 사탄이 무저갱에서 잠시 풀려나서 하는 일이 땅에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백성인곡과 마곡미혹해서 싸움을 붙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곡과 마곡은 나라 이름인데 이방민족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입니다.

 

이들이 과거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그 속성으로 성도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성도들과 곡과 마곡에 속한 백성들과 전쟁을 하게 하신 이유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전쟁이라고 해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은 아니라 삶의 방식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방식은 죽음과 부활을 의식하면서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사는 삶인 반면에 곡과 마곡에 속한 백성들은 세상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께 기도한들 자기를 위하는 기도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도는 관심을 자기에게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의 불행과 행복은 나에게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두면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겨도 결국에는 허무함을 느끼고 안좋은 일이 생기면 절망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1:19-21절에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여기에서 사도바울의 마음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살든지 죽든지 예수님만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고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 자신을 조금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에 이른 것처럼 그 부활의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첫째 사망인 죽음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복을 받았기에 살아도 은혜요, 죽어도 은혜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