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생명나무가 있는 나라(95)

박성산 목사 2022. 8. 15. 00:20

생명나무가 있는 나라(22:1-5)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 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오늘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내용을 보면 나사로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비록 병든 몸을 이끌고 거지로 살고 있지만 곧 천국에 갈 것을 믿음으로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성경에 나와 있는 천국을 믿지 않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즐기면서 살았습니다만 지옥에 가고 말았습니다.

 

천국은 사람의 지혜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모든 것이 차단되어 있는데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본문에 나옵니다. 이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본문 2-3절에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이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너무 다르지요. 이 세상은 걱정과 근심과 아픔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가진 것이 있어도 걱정이고 없으면 없다고 근심이에요. 다른 사람은 둘째치더라도 나만 생각하면 만족이 없고 걱정과 불만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가 진정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한다면 본문에 나오는 천국을 조금이라도 맛보면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눈만 뜨면 일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고생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고 싶은 마음은 저나 여러분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람인데 힘들고 지치면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성경에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이끄시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2절에 보시면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원래 생명나무가 이 땅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인데 기쁨만 있는 그곳에서 아담과 하와라는 조상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땅은 에덴동산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 쫓겨난 저주의 세상입니다. 원래는 에덴동산에서 우리도 살고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은 저주받은 땅으로써 잠시 살다가 가는 정거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치 수원역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대합실에 있다가 기차시간이 되면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합실에서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곧 떠나야 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인을 만나더라도 잠시 인사만 나눌 뿐 곧 헤어져서 가야 할 목적지에 가야 하는 겁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합실인 이곳에서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곳입니다. 어디로 갈까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계시록 20장에는 지옥이 나오고 21장과 22장에는 천국이 나오는데요. 천국에 간 사람들은 본문에 보니까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의미는 처음부터 나의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였었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창세 이전부터입니다.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관계인데요. 출애굽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언약을 맺은 증거로 피를 묻히게 하십니다. 24:8절에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가 희생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게 되면 언약의 증표가 되는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성령이 오심으로 믿음을 가지게 하심으로 언약의 증표를 삼게 하십니다.

 

이 피가 묻은 자는 반드시 자기에게 묻은 피가 누구의 피인지, 어떤 피인지를 알게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가 묻어 있는 자가 죄를 지을 때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다. 왜일까요? 자기에게 묻어 있는 피가 누구의 피이며 어떤 피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자면 가난한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늘 그 자리에서 허덕이다가 우연히 병원에 갔더니 간암 말기였습니다.

 

이럴 때 믿음이 있는 즉, 언약의 피가 묻어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똑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어 있어요. 자기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지요. 남 앞에서 태연한 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자존심 때문에 감추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차이가 있다면 피가 묻어 있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들과 똑같은 죄를 짓더라도 언뜻 성경이 떠오르거나 마음의 감동이 와서역시 나는 죄인이구나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이런 더러운 나밖에 모르는 죄인을 주님의 거룩한 피로써 지금도 용서하시고 있구나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성령이 그렇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평생토록 하게 하심으로 피가 누구의 피이며 피가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언약을 맺은 백성을 이끄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야 천국에 간 백성은 자기를 더러낼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욕심부리며 살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도 하나님은 죄를 무조건 덮어주셔서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그러면 이왕에 그럴 바에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부자로 살면서 그런 체험을 하면 안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부자와 가난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진 게 많으면 남에게 부러움을 살 것이고 남에게 허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좋을 것 같아 보이시나요?

 

그 또한 욕심입니다. 하나님은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떻게 사시는지를 다 아십니다.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매일매일 알려주시기 위하여 부자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어찌 천국의 맛을 부자가 되는 것으로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대합실에서 잠시 머무는 것인데 많이 가져본들 천국이든 지옥에 가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 피가 묻어있는 사람에게 직업이 무엇이며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묻지 않으십니다. 죄를 얼마나 지었는지 교회에서 직분이 무엇인지도 묻지 않으십니다.

 

언약은 한마디로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으면 무조건 정죄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이 주시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줄로 아시고 감사하며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