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강해

즐거움의 한계(6)

박성산 목사 2022. 11. 14. 13:44

즐거움의 한계(2:3-8)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 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 잡아 둘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 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 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 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 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 이 두었노라

 

 

 

 본문 3절을 보시면 솔로몬이 마음을 지혜로 채워서 육신을 즐겁게 할 방법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을 의지해서 즐거움과 쾌락의 극치를 맛보고자 하기도 하였고 사업을 크게 해서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수원을 만들고 과목을 심고 노비들을 사기도 하고 가축들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며 각종 보석들을 가지기도 하고 처와 첩까지도 많이 두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싶고 누려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평생을 두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는가를 스스로 경험을 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즐거움이 즐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허무로 마치게 되는 어리석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욕심이 솔로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역시 우리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어서 못 할 뿐이지 가지고 싶고 누릴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누리고 싶어 할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이러한 것들이 최고의 즐거움의 대상이라고 하겠지만 요즘으로 보자면 재벌 회장이든지,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죄라는 것은 항상 매력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은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또 다른 즐거움이 손짓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과 이유가 솔로몬이 가졌던 즐거움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는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목적이 있으니까 남들과 경쟁을 해서 뺏어야 나의 것이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술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더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나의 즐거움을 뺏어가기 때문에 즐거움은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에 꽁치 한 마리를 안주 삼아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들어와 옆에 앉아서 더 좋은 안주인 꼼장어나 오징어 무침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되면 혼자서 즐기는 시간이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자연스레 비교가 되기 때문에 초라해진 자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욕망이라는 것은 남을 이기고 정복하는 것에서 쾌감을 얻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즐거움과 기쁨을 남들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짓거나 포도원을 일구거나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과목을 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은 세월이 흐르면 낡게 되어 있고 포도원과 과목을 심더라도 만족할 만한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땀과 수고는 물론이고 더 큰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자연을 훼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가는 돌아오는 것이구요. 그러니까 즐거움은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본문 8절에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프로이드가 말하기를 인간의 가장 크고 근본된 욕망은 자손 번식이라고 했습니다.

 

처와 첩을 많이 두는 것이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남자나 여자의 생식기능을 통해서 자손 번식의 욕망은 그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처는 300명이었고 첩은 700명이었으니까요.

 

그러면 솔로몬만 이런 욕망이 있고 우리는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습니다. 그리고 이 욕망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 태어난 똑같은 본성을 가진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욕심없이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 욕심 없이 살려고 하는 마음도 남들의 비웃음으로 빼앗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솔로몬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의 힘으로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어리석음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지혜를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고후 4:3-4절에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영광의 빛이 비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리고 마음을 혼미하게 하기 때문에 믿을래야 믿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즐거움 저런 즐거움이 있다고 해서 그 즐거움이 계속 유지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끊임없는 용서와 은혜가 진정한 즐거움이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서 오늘을 사는 것이 진정 선한 일이고 지혜인 줄 믿습니다.

 

이 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