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강해
억울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36)①
박성산 목사
2023. 8. 1. 13:25
억울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전8:11-14)(36)①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 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 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 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세상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나쁜 짓을 밥 먹듯이 하는 자가 왜 장수하고 죄값을 즉시 받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지을수록 하나님이 빨리 데려가시거나 죄를 짓는 즉시 대가를 받게 하신다면 사람들이 죄를 덜 지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그에 관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롬 12:19절에 보시면‘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나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직접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지 말라는 것이지요.
왜냐면 하나님이 진노하심의 뜻을 따라서 하실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나보다 더 많이 지은 사람이 죄값 치루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대가를 받아야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으면 당연히 존경과 함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죄를 지었음에도 잘살고 장수한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까요? 선을 행했는데도 만약에 불행을 당한다면 정말 억울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사람에게 잘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당하는 억울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만 예수님처럼 억울한 분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일평생 선하게 사셨고 죄를 모르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는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저주까지 받으셨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까요?
죄를 짓고서 그 대가를 치룬다면 억울하지도 않고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만 예수님은 찾아온 병자들을 다 고쳐주시고 배고픈 자들까지 다 먹여주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셨음에도 그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초조하고 불안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내일을 모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억울한게 남아 있어서입니다. 나는 억울한 일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착한 일을 죄짓는 것보다 많이 했으면 적어도 큰 불행이나 사고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억울하지 않으면 불안한 것도 없어요. 근데 아무 이유없는 고난이 일어나면 억울하고 화가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칫 하나님을 시험하는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내 편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님이 따라주시면 내 편이고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 편이 아닌 것으로 시험하려고 하는데 이 또한 불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성도라면 그런 것들은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성도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과 초조한 마음으로‘이것만큼은 해결되어야 해.’라고 한다면 자기는 살아야 한다고 몸부림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아셔야 될 것은‘나는 억울한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아직 호된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북극에서 1년 살다오신 분이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만난다면 우리처럼 추위를 느낄까요? 그렇지 않지요? 상상할 수도 없는 혹독한 추위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그 호된 맛을 십자가에서 경험하게 되는데 예수님이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죽어야 하는 그 자리에 성도도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갈 2:20절에‘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므로 그 죽음이라는 경험을 한 성도는 더 이상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됩니다. 죽은 자리에 있는 성도는 살고자 하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은 행복한 일이나 불행한 일들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는 별로 잘못한 죄를 많이 저지른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라는 억울하다는 식의 기도는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내게 피해를 준 원수같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억울한게 없으니까 초조한 마음이나 불안한 마음도 사라질 수밖에요.
성도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라는 것이 믿는다면 세상에서 아무리 억울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덤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