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아브람의 잘못을 통한 하나님의 뜻(10)
박성산 목사
2024. 6. 17. 16:01
아브람의 잘못을 통한 하나님의 뜻(창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 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 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 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 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 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 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 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 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세상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얻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사의 눈치를 보거나 자존심이 상해도 열심히 직장에 다니는 것은 월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생활을 하니까요.
교인들이 교회에 나올 때도 뭔가를 채우려고 해요.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얻기를 원하지요.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워 주시기 전에 무언가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낮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다보면 원치 않는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인간관계에 의한 불편함이나 깊은 병을 얻을 때도 있고 가정불화도 있을 수가 있는데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또한 학교나 직장에서 괴롭힘이나 왕따를 당할 때 기도하기를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몇 배로 죄값을 받게 해달라고 합니다. 자기가 편한 쪽으로, 이로운 방향으로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도에는 응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모든 상황을 통해서 성도로 하여금 낮은 자리로 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을 잘 믿으면 하는 일이 잘되고 성공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고 있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변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낮은 자리로 말입니다. 근데 그 자리를 그 누구도 좋아할 사람은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본문 10절에 보시면 아브람이 살던 곳(세겜)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애굽에 가게 되는데 그곳은 물질적으로 매우 풍성한 곳이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는데 애굽을 다스리는 바로 왕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가는 이유가 기근도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자신이 복의 근원으로서 민족을 번성케 하려면 반드시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12-13절을 보시면 아주 비겁한 일을 벌입니다. 바로 왕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팔아 넘기고 그 대가로 상당한 재물을 얻습니다.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즉, 그 당시로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부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 자신은 이러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라도 복의 근원으로서 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해서라도 많은 물질을 모아야 복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역시 아브람도 물질을 많이 가지는 것을 복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을 보시고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17절을 보시면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의 일 때문에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 것인데요.
그 당시 애굽에서 바로 왕은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바로 왕을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떨게 하셨다는 겁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고 신과 같은 추앙을 받던 바로 왕을 말입니다.
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아브람이 한가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에게 이 세상의 어떠한 권력이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브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요. 그걸 계기도 없었구요. 그저 여러 신들 가운데 여호와라는 신으로만 생각했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천하 만물을 다스리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인 줄은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바로 왕에게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일을 경험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는 눈이 뜨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살던 땅에 기근이 들게 하셔서 애굽에 내려가게 하신 이유는 아브람이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겪어야 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 서두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내게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하나님께 그런 일을 빨리 해결해달라고 기도하기 바쁜데 하나님은 그 일을 해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시고 낮은 자리에까지 인도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도 그런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도 복을 받은 성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상황인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전도나 기도회나 동성애 합법화 반대 집회 등등 어떤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아브람이 복의 근원으로서 민족을 번성케 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그 일을 아브람이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뜻일까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요? 꼭 자기가 무엇을 해야 영광 받으신다고 믿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주 예수님은 강하시고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행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어떤 분이‘그러면 이제부터 아무것도 안 하면 되겠네. 하는 것마다 어리석은 일이니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하지 마라’가 아니라 ‘하라’는 겁니다.
다만 그런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부족한 모습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그 은혜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죄를 감추고 덮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함으로 은혜를 드러내는 식으로 해야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여러분, 아브람은 실수투성이입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남는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시고 은혜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임을 수시로 깨닫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바로 낮은 자리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