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10)
박성산 목사
2025. 3. 10. 14:52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출7:14-19)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 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 이를 손에 잡고
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 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 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 도다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 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 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대화라는 것은 예의와 존중이 필요합니다. 누구를 대하더라도 서로 간에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기를 원하지요. 현대인들이 사는 것은 타협과 흥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개인이나 국가와의 관계는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바로 왕에게 듣기 좋은 말로 서로 협상해 가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왕의 대우를 해주면서 말입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는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바로 왕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황당함과 협박당하는 기분까지 들었을 것입니다.
근데 만약에 하나님과 바로 왕이 대화한다면 그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순순히 보내줄까요?
사람이 대화할 때는 가면을 쓰기 마련입니다. 자기체면, 자존심, 친절이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바라는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바로 왕이 만나고 있습니다. 바로 왕이 가면을 벗고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가면을 벗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니까요.
출 7:13절에 보시면‘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이 말씀을 보면 바로 왕의 마음이 시멘트 바닥처럼 점점 완악하게 되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 대목과 연결되는 내용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하나님이 심판을 세 가지의 종류로 하십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입니다. 이 세 가지의 심판이 가면 갈수록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데 그 이유가 죄인들이 심판을 당하면 겁을 먹거나 돌이키는 것이 아니고 더욱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본질이 그만큼 악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a라는 사람이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해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만 그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결혼을 해서 자식이 학교를 갔는데 왕따를 당하고 학폭으로 매일 시달립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자식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습니다.
a씨는 슬픔을 달래면서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그래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언젠가는 행복하게 될 거야. 꼭 그렇게 하고 말 거야.’
이 정도 되면 하나님께 돌아올 만도 한데 심판받을 사람들은 마음이 교만하고 오기로 가득 차고 점점 더 완악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스스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속성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를 들어서 애굽의 나일강을 치고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가 피로 변해도 바로 왕의 마음은 더욱 완악해집니다.
이와같이 바로 왕은 점점 마음이 완악해지는데 반대편에 서 있는 하나님의 종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 2:5-8절에 보시면‘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어디까지 자기를 낮추시냐고 하면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신 그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를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성도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일 하심에 당연히 복종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와 여러분이 바로 왕이라면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왕은‘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품삯까지 주어서 대우를 해주었는데 그 공로는 몰라주고 이제 와서 데려가겠다고?’그렇게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가 더 센지, 내가 더 고집이 있는지 한번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내가 무엇을 했으니까 그 대가를 달라’는 식으로 살지 않습니다. 자신의 완악하고 강팍한 마음은 십자가의 피밖에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을 일기 때문에 십자가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변명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고백하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복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