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바로의 관심(15)
박성산 목사
2025. 4. 23. 13:48
바로의 관심(출8:25-32)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 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 호와께 제사(희생)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 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희생)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 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 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 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 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30 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 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본문에서 모세와 바로 왕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뜨고 있는 방송 중에‘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 학교 다닐 때 all‘A’학점을 받은 어떤 학생이 레지던트 1년 차에서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는데 선배가 볼 때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요. 환자와의‘공감 능력’이었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읽어서 얼마나 아픈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채워줘야 하는데 아직은 서투르게 보인 모양입니다. 그 학생은 환자와의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책에서 해답을 찾으려고만 합니다.
우리가 상대방과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 더 깊게 대화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와 소통이나 공감을 하시면서 하시는게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앞세워서 일을 하십니다.
본문 26절에‘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희생)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희생)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이 말씀에서 제사, 희생(개역)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너희가 희생을 아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기쁘시게 해드리겠습니다. 죄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희생이 무엇입니까? 굳이 희생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라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데요.
본문에서 바로는 희생은 관심이 없고 모세에게 제사 드리는 것을 허락하면서 하는 말이 28절에‘나를 위하여 간구하라’즉,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지요. 희생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혹시 살아계실지도 모르는 하나님께 모세가 기도해주면 그 덕을 좀 보겠다는 것입니다.
희생의 뜻은 이겁니다.‘너희가 누구 덕분에 사는가?’하는 것입니다. 누구 덕분에 오늘을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하나님은 희생을 가지고 설명하시는 겁니다.
만약에‘누구 덕분에 사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내가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내가 열심히 살아온 덕이라고 하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로 있을 때 7년간 대 풍년이 있었지요. 백성들은 넘치는 곡식으로 자기들이 섬기는 신에게 감사하면서 풍요롭게 지냈습니다. 근데 요셉의 입장에서는 백성들이 7년간 마음껏 즐기고 누리고 있으면서 무얼 모르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7년의 풍년은 요셉의 꿈을 통하여 이미 하나님이 세우신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7년간 흉년이 옵니다. 7년간의 풍년과 7년간의 흉년을 보면서 요셉은 이 모든 것, 즉 풍년과 흉년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왜냐면 흉년이 왔기 때문에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고 보고 싶었던 아버지, 야곱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14년간의 풍년과 흉년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일으키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고 해서 몸이 아프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마음대로니까요.
그러니까 병이 들어서 낫는 것만 은혜가 아니고 건강할 때 은혜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마치 요셉이 7년간 풍년이 들었을 때‘이건 하나님이 주신 은혜니까 모아 놓고 흉년이 있을 때 그동안 모아두었던 곡식을 온 백성들에게 나누게 하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구나.’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셉 덕분에 애굽이 막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니까 요셉을 잊어버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미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 미움의 대상인 이스라엘 백성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으며 사는 백성들이 핍박을 받아서 죽으실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드리는 제사가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서 생명을 내어 준다고 할지라도 그 자식은 어차피 늙고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근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이상의 사랑이 희생의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바보같은 인간들은 왜 그 사랑을 모를까요? 인간들의 무지몽매한 무지가 미움으로 다가와서 하나님을 죽였는데 그게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너희가 나의 희생을 아느냐? 사랑을 제대로 아느냐? 제대로 누리면서 살고 있는가? 를 묻고 계십니다.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