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예수님의 구원관(57)①

박성산 목사 2016. 9. 19. 00:26

예수님의 구원관(마11:1-10)(57)①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 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 에게 고하되

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 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 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 시니라

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 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 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올해 추석은 황금연휴라서 직장인들은 해외여행을 가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요. 일상을 탈출해서 멀리 떠나보는 것도 필요한 지혜인 것 같습니다. 본문말씀을 준비하다 보니 분량이 좀 길어서 2주에 걸쳐서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신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일까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아무 대답을 못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에게 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더 많이 알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를 보기 위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나은 나’ 말입니다.

 

신자들이 교회에 5년 이상 혹은 10년이 넘으면 성경은 좀 알고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놓치기 쉬운 것이 자신의 죄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신의 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죄가 없어야 구원받는다는 사고가 밑바탕에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가 많았는데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니까 죄가 점점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야지 천국에 간다고 믿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다니시면서 죄를 점점 덜 짓게 되시던가요? 아니면 죄가 더 크게 보이시던가요?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 용서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빠지면 그 조직은 잘난 사람들의 모임으로 전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55:6-7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소위 성화나 거룩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 있는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실 분들이 있으실텐데요. ‘기도 많이 하시고 노력을 하셔야 될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죄를 덜 짓게 하시고 거룩하게 만드신 후에 구원받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도를 노력해야하는 도구로 삼거나 죄를 덜 짓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동으로는 숨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어떡해야 죄를 덜 지을 수 있을까요?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오는 죄를 억누른다고 죄를 짓지 아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앞으로 저는 그러한 것은 신앙이 아니라 죄가 그대로 있는 사람도 갈 수 있는 천국, 심지어 갈수록 죄를 더 많이 짓는 사람도 갈 수 있는 천국을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증거해야 할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그만큼 변질되었고 참 교회가 아닌 인간적인 단체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끊임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용서받고 자기의 잘남은 모두 덮어버리고 오직 주님의 사랑만 남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의 견해가 대립이 됩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이 가지고 있는 구원관과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구원관입니다. 세례 요한의 구원론은 본인이 죄라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회개하면 그 회개한 죄만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교회에 와서 지난 죄지은 것을 낱낱이 회개를 하면 나중에는 회개할 내용이 점점 없어진다는 거예요. 그것이 성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일이 있게 되는가하면 용서의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은 멀어지고 잘난 자기를 보면서 뿌듯해 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용서의 하나님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를 회개한 것만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전부다 송두리째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회개한 죄만 용서하시는 분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으로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사고를 가진 분들은 자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교회에 잘 나오고 회개를 열심히 하다가 사업이 잘되면 그때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회개를 많이 했고 잘못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증거로 사업이 잘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일이 잘 안 풀리면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해서 교회를 찾아옵니다.

 

마3장에 나오는 세례요한의 주장은 ‘너희 죄를 다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죄를 다 아느냐? 아마 모를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의 용서를 가지고 너희 죄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이미 주어진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평생동안 자신의 죄를 발견하면서 이러한 죄가 있었기 때문에 이미 용서받았던 것을 확인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죄를 점점 덜 짓는 ‘나’를 보게 되면 예수님의 은혜는 점점 작아지게 보이지만 진정한 성도는 과거에 비해서 별로 나아진 것도 없는 죄인인 ‘나’를 이미 용서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세월이 가면 갈수록 깊게 느껴질 뿐입니다.

 

분명 세례요한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마11:11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알고 있는 용서의 하나님이 세례요한이 알고 있는 하나님보다 더 많이 확실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보다 큰 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속성때문에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확실하게 아셔야 합니다. 어느만큼 아셔야 되냐고 하면 목숨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에 대해서 아셔야 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오해를 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알고 그것이 죄임을 평생동안 느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을 아는 유일한 길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이 아는 구원관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관으로 살고 있는지 판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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