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 기도할 수 없는 이유
(마26:36-42)(161)②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 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 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 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 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 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 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우리는 지난주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지 않으신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원래 기도는 세상의 시작과 끝을 훤히 다 아시는 분에 한해서 자격과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 이유는 우리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기도할 뿐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도 못하고 아예 관심조차 없을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초부터 기도할 자격이 없어요. 그럼 기도하지 않는 것이 나을까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세요. 기도하시면서 ‘내가 이런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죄인인 것을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 또한 은혜를 체험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십자가는 사형당할 죄인들만 당하는 아주 가혹한 형벌입니다. 죄는 세상이 지었는데 그 죄의 댓가를 예수님이 당하는 것입니다.
롬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죽음을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벌이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마음이 심히 괴롭고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38절에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자신을 내세우기에 바쁜데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의 형벌을 대신 져야 하는 현실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현실은 이 땅에서 얼마나 잘 살 것인지에 대한 관심밖에 없는데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들을 위해서 지옥형벌을 받으시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애 동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의 현실이 다른데 기도의 내용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하시기를 본문 39절에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당해 낼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자식이나 소중한 식구가 생명을 잃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중에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을 성도라고 부르는데 성령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스스로 가는 사람은 한명도 없지만 성령께서 이끄는 성도는 십자가에 동참되었다는 증거로 고난을 겪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제자들이 함께 기도를 못했지만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제자들이 그 기도에 동참케 하시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2000년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현재 실제로 우리에게도 맛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 같은 죄인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이 고통을 너도 맛을 봐야 너는 나의 백성이요 형제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전에는 세상에서 꿈꾸었던 것이 이제 보니 망상에 불과한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전혀 상관없이 세상에서 좀 더 건강하게 오래살고 여유있게 살면서 죽어서도 천국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그 사람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 많은 사람에 불과하고 아직까지 마 26:33절의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하는 자신의 자랑만을 위해서 사는 베드로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2주 전에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세상은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이 서로 싸우는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영적으로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주님만 바라보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자꾸만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실망할 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괜찮아. 염려하지 마. 내가 모든 것을 해결했잖아. 십자가의 피만 의지해’라고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맛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겟세마네는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계시는 곳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인 줄 믿으시고 예수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기도로 말미암아 고난받는 삶이지만 성도가 된 증거를 안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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