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144,000명(34)

박성산 목사 2020. 8. 3. 17:46

144,000명(계7:4-8)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 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 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 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오늘은 144,000명이라는 구원받은 백성들과 그 수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후손은 절대 들어가지 못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12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방식은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했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들이라도 이 고백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좀 더 노력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는 신자들을 볼 때에 섭섭한 마음이 적지 않습니다. 어차피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는 것인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사는 것은 본인에게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할 것은 우리는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개와 같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개가 구원받을 일이 없지요. 그리고 개는 배만 부르면 만족하고 삽니다. 구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큰 고민은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방법으로 죽음을 이겨보려고 종교를 만들었고 의학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고 과학은 점점 진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궁극적 목표는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간적으로 모든 방법을 통하여 구원받으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행위’라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내가 믿어 줄 테니까 복과 천국을 달라고 하는 것도 모두 행함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것이 믿음이냐 행함이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좀 전에 제가 사람들의 가장 큰 인생의 숙제가 죽음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선물로 주신 믿음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성도들을 죽음에 맞닥뜨리는 환경에 처하게 하십니다.

 

성도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 이르렀을 때에 주님이 나에게 주신 믿음의 능력으로 죽음조차 넉넉하게 이기는 생명으로 찾아온 것을 경험하게 된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것을 복이라고 합니다만 복음을 믿는 성도는 고난을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롬 5:3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절에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 소망을 이루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고전 1:8절에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책망밖에 받을 것이 없는 자신이지만 주님은 믿음의 옷을 입혀주셔서 끝까지 지켜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하신다면 자신의 행동으로 신앙을 측정하려고 하지 마세요.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잘난 행동으로 측정하고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12지파에 속한 자들로서 144,000명밖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은 무조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다만 아브라함의 혈통의 자손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자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마 10장과 11장에서 구원받는 백성을 택하시는데 12제자들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을 바로 새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는 율법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신약에는 예수님이 직접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증거하시고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박사라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끝까지 행위만을 강조하고야 말 것입니다만 성경에는 이들을 가리켜서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저주를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주신 사랑을 모를뿐더러 관심조차 없습니다. 자기밖에 모르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롬 8:33-39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고난을 통하여 얻을 수가 있고 인침을 받은 증거인 줄 믿습니다.

 

요 6:35-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 복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12지파에 속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인침을 받은 자들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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