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값없이 받은 자들(91)

박성산 목사 2022. 7. 4. 10:32

값없이 받은 자들(21:6-8)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 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성경은 에수님의 은혜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땅에 속하다 보니까 오늘 말씀에 나오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8절에 보시면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밤잠을 설치거나 정신적인 장애를 안고 사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막상 성경 앞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는 것 같아요.

 

두려운 말씀을 보고도 남의 얘기처럼 무감각하다고 한다면 믿음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하나님의 뜻은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 세상의 끝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살이에서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지만 말씀 앞에서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루었다고 하는 뜻이 어떤 이루심인가를 발견하고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8절에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는 말씀은 심판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세상의 끝에서 바라보지 못함으로 불안한 내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입니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죽었다고 지긋지긋한 세상과 이별하더라도 불과 유황으로 던져지는 둘째 사망이라는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16장에 보시면 부자가 지옥에 갔는데 그곳은 결핍만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서는 물로써 결핍을 말하고 있는데 사람이 언제 제일 고통을 당하는가 하면 결핍을 느낄때입니다.

 

지옥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영원히 겪어야 하는 곳입니다. 세상에도 역시 결핍밖에 없지요. 만족이 어디 있나요?

 

그러한 세상에서 자꾸만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제대로 된 신앙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모두 자기들의 결핍을 채우려고 세상에서 애를 쓰던 자들입니다.

 

노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4:37-39절에 보시면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있을 때에 사람들의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 외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방주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결핍을 느끼면서 채우려고 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던 것이지요

 

세상의 끝을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사에는 세상에만 집중되어 있었지 방주를 만드는 이유조차 알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필요가 없으니까요.

 

방주는 홍수나 태풍이 불어도 필요가 없고 세상에 물이 잠길 만큼 큰 난리가 나야 필요합니다. 근데 아직 오지 않은, 와서는 안되는 난리를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 방주를 만드는 것이 그들이 볼 때에 정상이 아닌 것이지요.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세상을 본 것입니다. 심판에서 본 세상은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외롭지요. 비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노아의 방주는 옛날 사건입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오늘날의 방주는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타지 못한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막상 오늘날의 십자가에 대한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해서 심판을 받았듯이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인간의 노력이나 방법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로만 택하심을 받아서 간다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본문 6절에 보시면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어리석은 사람들은 천국가는 값을 치루려고 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보다 자기들이 치루는 값이 더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보다 자기들의 공로가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충성, 봉사, 이웃사랑이라는 값을 치루어서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말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성도라면 아무런 값없이 주신 은혜를 그저 감사하면서 누리는 줄 믿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니까 갚는다구요? 구원을 받았으면 그 값을 치루어야 한다구요? 은혜라는 것은 감사하면서 누리는 것이지 갚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공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은혜받은 값을 치룬다고 한다면 누구를 높이겠다는 말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자신의 값을 치룬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그들의 값을 태우게 될 것입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두려움이 없는 자이고 믿는 자입니다.

 

이 진리를 믿는 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