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를 통한 복(창38:1-11)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 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 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 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 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 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 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 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우리가 살면서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걱정과 근심입니다. 신앙이 있다면 근심과 걱정이 없어야 마땅합니다만 그러한 사람이 어디 있나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약속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으로 말미암아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약속을 믿는다면서도 근심이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약속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한마디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레와 같이 번성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손이 왜 복일까요? 무조건 많으면 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자손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 누구는 누구를 낳고라는 말씀이 나오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낳기 위해서 그 조상들은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신 백성을 통하여‘내가 복을 준 백성들이 오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게 되고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구약의 전체 내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고 싶어서 교회는 나오지만 세상에서도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만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신앙의 계보를 잇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천국에도 가고 싶고 세상에서도 잘살기를 바란다면 약속을 믿는 신앙인으로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다는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세상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시면‘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아브라함이 과거에 이삭을 위해서 수백 리 떨어진 자기 고향에 종을 보내서 며느리인 리브가를 데려온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실 텐데요.
야곱의 아들인 유다가 이방 나라의 여인을 취해서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신앙과 거리가 먼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만 그리 한 것이 아니고 맏아들도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이방 여인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교회만 다닌다고 전부가 아닙니다. 실제 생활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현실입니다. 신앙 따로 현실 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회 안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나의 모든 삶을 심지어 나의 발걸음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과 계획하는 그 모든 것을 주의 뜻대로 이끌고 계심을 믿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유다는 자기 뜻대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 생각에 이런 유다는 지옥에 가는 것이 옳지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는 유다는 당장 하나님이 죽이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악하다고 죽이셨는데 유다는 살려두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다는 야곱의 자식이라는 점을 우선 염두해 두셔야 합니다. 조금 전 제가 약속의 내용에 대해서 알려드렸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려면 반드시 아브라함의 계보를 잇는 자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과연 하나님은 유다를 통해서 신앙의 계보를 어떻게 이어나가는지 그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오늘 본문은 꼭 있어야 합니다.
유다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맏아들은 엘이고 둘째는 오난이고 셋째는 셀라입니다. 유다는 엘과 결혼시키려고 다말이라는 이방여인을 데려옵니다. 이 다말이라는 여인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문 7절에 보시면‘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엘이 악하므로 그만 죽이십니다. 유다는 맏아들이 왜 죽었는지 모릅니다. 자기 죄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자식이 죽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인 오난에게 형수인 다말과 동침을 하게 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자식이 없으면 하나님께 저주받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대를 잇기 위해서는 동생의 씨앗으로 대를 이어야만 했습니다.
9-10절에 보시면‘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오난이 생각할 때는 자식을 낳더라도 어차피 자기 자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만 동침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죽였습니다. 오난도 역시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다가 죽은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둘째 아들까지 왜 죽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복을 받은 야곱의 자식임에도 유다는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관심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12지파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다를 어떻게 이끄시고 신앙의 계보를 이으시는 걸까요?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 다음 주에 계속 이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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