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신 예수님(마5:43-48)(22)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 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 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 도 온전하라
오늘은 온전하신 예수님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고 하시는 말씀이 계속 반복되어서 나옵니다. 구약과 신약을, 율법과 복음을 비교하시는 말씀하시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율법이나 복음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같은 진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해서 행위, 즉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인간의 의만 드러내는 죄라고 하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낱낱이 들추어내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으로 우리의 허물을 들추실까요? 허물은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한 것이지요. 자신을 모르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너희가 과거에는 이렇게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고 하시는 이 내용으로 살인과 간음과 맹세와 보복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결론에 해당하는 원수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43절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말씀의 근거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은 레19:18절에 나오고 '네 이웃을 미워하라'는 것은 신7:2, 30:7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너희도 온전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네 이웃을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를 하면 온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문자 그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하신 말씀이실까요? 여러분도 그렇게 이해를 하고 계시는지요? 그래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하나님께 오늘도 사랑하게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것입니까?
여러분, 우선 우리가 생각해봐야 될 것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도 한때 원수처럼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안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을 비관하면서 기도하기를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원수도 아닌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막상 그 사람을 생각하면 사랑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안 됩니다. 더구나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를 핍박하고 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는 커녕 차라리 그들이 폭삭 망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문 45절에 보시면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사실 이 말씀을 보면 더욱 우리와 거리가 멀어짐을 느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것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합니다. 원수는커녕 가족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무슨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는 이 사람에게 뭔가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가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말씀을 드리면 사람들은 누구든지 상대방을 자기에게 유익한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더 이상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판단되면 관계를 서서히 줄이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우리인데 끝까지 사랑하고 내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너무 가혹한 말씀으로 다가오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롬5:6~10절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되고 그의 살아나심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강할때에 사랑하기는 쉬운데, 의인을 사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원수가 아니라 친구는 사랑하기가 쉬습니다만 우리 주님은 자기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밖에 자기의 죽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고 다시 살으심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정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온전하신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믿는 그 심령이 바로 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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