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제(23)

박성산 목사 2016. 1. 4. 15:29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제(마6:1-4)(23)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 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 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 가 갚으시리라

 

 

 모든 사람은 본능에 따라서 살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노력해도 자기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본능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신을 철저하게 감시를 한다고 하더라도 나도 모르게 마치 화산재가 분출하듯이 죄의 본성이 터져 나와서 주위에 흘러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구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구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죄악 된 본능이 터져 나오는지를 알려 주시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구제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구제는 참으로 의로운 행위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선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구제라는 선한 일을 통해서도 인간의 죄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죄만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마치 화투장의 뒷면 같이 똑같습니다. 화투장의 앞면은 각가지 색깔로 채색되어 있고 저마다 매력적인 모습을 드러내지만 뒷면은 똑같은 색깔로 어둡기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치장하고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상은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뒷면은 모두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에 그 어떠한 조건을 묻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유황불이 떨어지려고 할 때에 구원받은 롯이 과연 다른 사람들보다 어떤 차이점이 있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심지어 롯의 사위들은 유황불이 올 것이라는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평소에 장인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장인의 말을 우습게 본 게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전혀 우리에게 조건을 보시지 않으시고 단지 하나님의 약속과 관계되어 있느냐를 보십니다.

 

롯이 개인적인 다른 사람보다 재산이 많다든지, 인격이 훌륭하다든지, 대인 관계에서 덕을 많이 쌓았다든지 이런 조건들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롯은 다른 사람들과 차이라면 그냥 하나님의 약속을 순순히 받아드린 것 뿐입니다.

 

오늘은 주제가 구제입니다. 구제는 참 좋은 일인데 예수님은 구제를 통하여 우리가 얼마만큼 죄를 짓는 죄인인가를 들추십니다. 왜냐하면 구제를 안할 때보다 구제했을 때는 그만큼 자신을 의로운 쪽으로 자기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가치있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같은 아담의 죄를 같이 물려 받았는데 과연 구제를 한다고 해서 남보다 더 영광을 받는 것이 합당할까요?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의의 선물을 받지 못하였기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의의 선물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외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이란 사람 앞에서냐 하나님 앞에서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 안에 있다면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사람의 눈치밖에 볼 것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사람앞에 인정받고 영광받기를 원해서 한 일이니까 이미 자기상을 받은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구제는 주님과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본문 3~4절에 보시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 세상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은밀하게 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는 말씀으로 생각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구제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자기 스스로 는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것은 스스로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얼마든지 이러한 은밀한 구제를 합니다. 남에게 알려지거나 그렇지 않거나 모두 다 죄인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제를 왜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잠언 19:17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가난한 자에게 구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신10:17~19절에 보시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와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신 것은 너희가 애굽 땅에 있을 때에 나그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를 통하여 너희가 과거에는 구제를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제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영생을 가졌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제를 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갚으심의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를 단지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그런 구제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을 더 큰 선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지 남을 돕는 구제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행3장을 보시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임한 제자들이 성전에 가다가 구걸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성전 미문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구걸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달라고 하는 앉은뱅이에게 돈으로 그에게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제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으로는 진정한 구제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참된 구제란 예수의 이름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구제에 힘을 쏟읍시다. 고아와 과부와 같은 우리를 예수님께서 구제를 해 주심을 잊지말고 이 땅에 수많은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가족부터 구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여러분, 진정한 구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얻는 것임을 잊지 않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