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고백(마10:28-33)(54)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 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 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 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 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28절에 “보시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지옥을 만드신 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부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류에게 저주를 내리시는데 어떤 식으로 하시는가하면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영원히 거하게 하는 저주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마주 선다는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대적하는 자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될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대적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선악과를 따먹은 이상 하나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우리는 ‘내가 신이다’를 인정하며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내가 신인데 다른 신이 나를 주장한다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무조건 지옥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 천국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3장에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몸과 영혼이 지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신 인줄 알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잠시 언급한바가 있습니다만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긍정의 사고방식에 기초를 하고 있습니다. 인도에 라즈니쉬라는 철학자이자 자칭 성자, 부처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도가 약 50만명이 되는데 미국의 국세청에 의하면 세금을 포탈해서 현재는 추방당해서 인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그가 가르치는 궁극적 가르침은 ‘웃음’입니다. 단순하지요?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도 웃어라. 해를 보고 웃고 사물을 보고 웃으면 그 웃음이 너의 행복에 기초가 된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가? 웃어라.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웃는 것이 가르침의 최종 목적지이다. 그러나 웃지않고 너무 세상에 대해서 걱정을 하니까 그것이 우울증과 슬픔과 눈물로 오는데 그러나 마지막 목적을 웃음으로 바꾸면 그것이 행복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웃어버려라. 이것이 영원한 진리이다.’
여러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습니까?
베트남의 스님인 틱낫한이라는 사람은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현재만 생각하라 그리고 멈추어라 생각을 멈추고 모든 것을 멈추라 그러면 고민도 사라질 것이다. 항상 일을 할 때 느리게 하라 느리게 사는 것이 진리다.’ 이런 것이 동양철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데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까? 세상에서 찌들고 망가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말이 너무나 달콤한 맛으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기가막힌 사실은 라즈니쉬에게 많은 신부와 목사가 찾아가서 가르침을 달라고 할 때에 ‘당신들은 거짓말쟁이다. 왜냐하면 신이 바로 당신들인데 없는 신을 왜 믿으라고 하느냐? 자신의 힘을 키우려고 없는 신을 만들어 놓고 신자들에게 신을 믿으라고 하니 그것이 거짓이 아니냐고 무엇이냐? 그리고 내가 있어야 예수가 있고 내가 있어야 하나님이 있지, 내가 없는데 신이 무슨 소용이냐? 자신의 가치를 높이라.’
그 말에 감동을 받아서 많은 목사와 신부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본문에서 참으로 민망한 말씀을 하십니다.
29-31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는 시장에서 채소나 과일이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합니다. 참새도 팔고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찮은 매매하는 것까지 하나님에게 허락을 받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집에서 라면 끓일 때 하나님에게 허락을 받고 요리를 하시나요? 아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요. 이 말씀은 너무 하찮게 여기는 것조차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생각조차 못한 것을 끄집어내십니다. 우리는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팔 마음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니가 내 허락없이 하찮게 보이는 참새가 팔릴 것 같니?’라고 하십니다. 한 앗사리온은 요즘 화폐가치로 보면 5,6천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 허락받지 않고 살아온 세월들이 대부분이 아닙니까? 뭔가가 아쉬울 때만 기도를 하잖아요.
사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평소에 가지던 마음이 아닐까요?
여러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다른 일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하물며 천국에는 우리 마음대로 갈 수 있을까요? 가고 싶다고 조르면 하나님이 보내 주실까요?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대답이 32절에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그냥 예수님을 나의 주로 시인하는 것이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은 분이 아니라 미움을 받은 분이고 배척을 받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가족에게나 친구에게 배척받아도 좋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면 그 때에도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미워하고 배척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불교신자인가요? 말씀을 안 지킨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에 의해서 예수님은 가치없는 존재로 취급당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요? 자기를 위한 예수님만 있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영광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고 계신, 나를 위해 대신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과 동행하게 된 것이 믿어지시면 정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성도야말로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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