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고난(마10:15-23)(52)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 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 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 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 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 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 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 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오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부류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너희’라고 하는 양(16), 보냄을 받음(16), 나를 인하여 끌려 가리니(18), 미움을 받을 것이며(22), 핍박당할 것(23)이고 또 다른 부류는 이리(16),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채찍질 하고(17), 끌고 가고(18), 형제와 자식과 부모를 죽게 할 것(21), 미워하고(22), 핍박할 것(23)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도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인정받을 때에 힘이 나고 자존감이 생기는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은 관심이 없는 분 같습니다. 전도 할 때만 고난 받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을 고난 받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면 너무나 혹독한 일이 아닐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속에서 허덕이는 것을 즐기시는 분은 아닙니다. 세상이 이미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누구나 고난을 받으며 살 수 밖에 없지요. 어찌보면 하나님의 도를 증거하는 빛의 제자들은 어둠의 세력에게 핍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핍박받는 위치에 있을까요? 아니면 핍박하는 자리에 있을까요?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올 때에 위로받고 사랑받기 위해서 나오는 수가 적지 않습니다. 만약에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다른 교회로 옮길 가능성은 다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과 너무 다릅니다.
본문 21-22절에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이 말씀은 시대적으로 보면 그 당시에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실제로 핍박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편하게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되어야 할까요? 교회에서 미움을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지요. 그런데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견디기 힘든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곱씹어보면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예수님은 예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형제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미움을 받으면 그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뭔가 얻겠다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사랑대신에 미움을 받는 곳이 교회라면 거기에 버틸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는 바로 이런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진정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이런 일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6절에 보시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10:27-28에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제가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양이 하나님의 양이 되는 것은 누구의 능력으로 됩니까? 주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은 다 아시지요? 그런데 그 고백을 이리 한가운데서도 할 수 있습니까?이리에게 언제 잡아 먹힐지도 모르는 환경에서도 그 고백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어렵지요. 쉽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가능합니다. 만약에 10번 순교해도 11번째 낙담하는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아무리 버텨봤자 우리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그 어떠한 것을 보태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은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불가능함을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고난의 환경 속으로 성도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로만 구원됨을 알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환경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시험과 유혹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물질 때문에 시험들고, 없으면 없다고 시험들고, 자식 때문에 시험들고 등등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마귀는 시험 할 때에 우리가 무엇인가 감추고 싶은 약점을 노리고 시험합니다. 마치 바이러스가 몸의 약점을 파고 들 듯이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이것인데 이것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왜 자꾸만 단점을 들추냐고라고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네가 너의 힘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주님의 십자가 피로만 구원받는 것인 줄 깨닫지 않겠니?’라고 말입니다.
마19장에 어떤 부자가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청년은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하나님 말씀을 어릴 때부터 충실하게 지켜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21-22절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율법을 지켰을지는 모르나 물질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 인 것이지요. 이와같이 성도는 자신의 약한 부분이 들추어짐으로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으로 구원받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 분문은 참 암담한 느낌입니다. 솔직히 두 번은 보기 싫은 내용이지요. 교회에 올 때는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 혹은 위로를 받기 위해서 왔는데 예수님은 반대로 지금 위치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는 지경에 처해 있을 때 어느 누가 그 환경에서 헤쳐 나올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진 고난을 주시는 이유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두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는 18절에 나오는데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증거'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또 다른 중요한 단어는 23절에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여기서는 '인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두 단어를 서로 연결시켜 보면 예수님은 성도를 예수님의 인자(人子)되심을 증거해야 하는 증인으로 뽑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참 성도는 예수님의 인자되심을 이 세상에서 증거하라고 교회로 부르시고 주님을 믿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드러내라고 믿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인자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니엘 7장에 보시면 인자라는 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인데 마지막 때에 구름타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과 아닌 자들을 구별하시는 분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의 나라를 영원한 나라로 만들고 그렇지 않는 자들은 지옥불에 보내버리는 일을 하시는 분이 바로 인자입니다.
그런데 이 인자 되시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 중에서 증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분을 모르는데 어찌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성도를 택하여 교회를 만드시고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만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몫인 줄 믿는다면 어려움과 힘듦이 있더라도 당연히 올 것 인줄 믿으시고 나의 불가능을 늘 인정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자되심을 널리 증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빌 4:12-1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도자의 고백(54) (0) | 2016.08.29 |
---|---|
전도자의 자격(53) (0) | 2016.08.21 |
예수님이 원하시는 전도(51) (0) | 2016.08.07 |
제자들을 부르심(50) (0) | 2016.08.01 |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49) (0) | 2016.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