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왼편에 있는 자들(155)

박성산 목사 2018. 10. 31. 12:47

왼편에 있는 자들(마25:41-46)(155)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 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 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 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 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 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서 하신 말씀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자기 나름대로 선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착한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영벌입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보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에 그것을 판정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서 충성을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무조건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준에 의해서 판가름이 난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40절 말씀을 보시면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선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미 결정이 났다는 뜻입니다. 변경이 불가하다는 뜻이에요.

 

이러한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마치 가룟유다처럼 말입니다. 마 26:24절에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이 가룟유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가룟유다는 자기가 택함을 받은 것으로 착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서 병을 고치고 심지어 귀신도 쫓아내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회계를 맡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저주받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자와 복 받은 자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본문 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지옥을 누구를 위하여 만들었는가 하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은 마귀와 함께 영원한 불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어떤 기준으로 보내는가를 알면 될 것입니다.

 

그 기준이 바로 계 12:7-8절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이 말씀은 창3장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인데요. 이 마귀가 어떤 속성이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에 관해서는 무조건 반항을 합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는데 바로 하늘의 전쟁입니다.

 

하늘에서 천사장인 미가엘과 마귀가 싸우다가 이기지 못해서 마귀는 땅으로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무조건 싫어하고 반항하는데 그 이유가 ‘죄를 지었는데 용서를 왜 해주느냐’는 것입니다.

 

슥 3:1-5에 보시면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죄를 지어서 더럽혀진 옷을 벗기시고 새 옷을 입히시는가? 고 마귀가 불만을 삼는 내용입니다.

 

마귀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마귀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과 종교에 약합니다. 물질을 최우선으로 삼고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 많고 적음이라고 믿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착해야 죽어서 천당에 가고 나쁜 일을 하면 천당에 못 간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살게 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사람의 양심을 건드려서 죄를 지으면 양심에 가책과 더불어 후회를 하며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윤리와 도덕적인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세상 사람들을 이끄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양심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용서하심이 빠진 상태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천국에 가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교회에서조차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하게 만듭니다. 오래 믿을수록 점점 거룩하게 되어서 죄를 덜 짓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마귀의 아주 교묘한 술책임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뜻 보기에는 좋은 방향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의 용서하심입니다. 이 용서하심이 빠지게 되면 사람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복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의 술책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마귀는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굳이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없고 착하게 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존경하며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가야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부모님께 불효하고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해치는 이런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마귀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롬 8:31-34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 말씀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일평생 남을 죽이고 노략질을 했고 어떤 창녀는 수백 명과 상대해온 더러운 몸을 가지고 천국에 간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 송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그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은 자가 예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 사람을 고소하겠느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용서하시는 현장에서 용서받은 우리를 마귀는 사사건건 시비 걸고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착한 일을 해야 구원받는 것이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왜 구원을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짓밟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요 8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이 나오는데 바리새인이 간음하지 않은 자기는 천국에 가고 간음한 여인은 지옥에 가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예수님께 시비를 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7절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으로 마귀의 자식들을 모조리 몰아내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보십니까?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함으로 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고 나쁜 짓을 하면 저주받아서 힘들게 인생을 살아간다는 마귀로부터 물려받은 선악적인 틀이 사람들의 본성에 지금도 뿌리로 자리잡고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착한 일과 나쁜 일의 차원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죄 용서함을 받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을 믿는 사람에 한해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정죄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용서함을 받지 못한 채 선한 일로 복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선한 일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선한 행동으로 천국에 가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왼편에 있는 자들이고 염소와 무익한 종인 것입니다.

 

우리 함께 주님의 용서하심으로 영원히 정죄치 않는 복을 받아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