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을 자(11)

박성산 목사 2020. 1. 20. 00:24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을 자

(계2:10-11)(11)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 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 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롬 4:5절에 보시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원리에 의하면 전혀 상반된 내용이지요. 세상은 심은 대로 거두듯이 선을 행하면 그 댓가로 존경을 얻고 칭찬을 받습니다만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더라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신데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건하지 않은 자일지라도 예수님의 거룩하신 의의 옷을 입은 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예수 안에 있는 자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둘째 사망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보시면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나오는데 ‘둘째 사망’이라는 말은 첫째 사망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 사망은 죄와 허물로 인하여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첫째 사망을 당한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한 후에는 둘째 사망, 즉 지옥에 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망의 늪에서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건져주지 않은 한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누구를 건져주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일은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은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막 10:46-52절에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고대시대에는 맹인은 거지로 살아가는데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으니까 남에게 빌어먹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를 질러서 예수님에게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자 예수님이 그를 불러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면서 보게 되는 복을 주셨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내용은 믿음이라는 것은 맹인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부를 때에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핀잔과 모욕과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이나 따가운 눈초리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드시 나아가게 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 쉬운 것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데 신앙생활을 계속 해야 하나?’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그래서 스스로 위축되어서 교회에서조차 남이 알까봐 쉬쉬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분은 이혼해서, 어떤 이는 대학을 못가서, 직장이 없어서 등등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신앙생활에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일까요? 사람일까요?

 

방금 읽은 이 말씀을 인간적으로 해석을 하면 예수님에게 한번 기도해서 안 되면 다시 하면 예수님이 언젠가는 응답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는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바디매오의 경우입니다.

 

우선 그의 상황을 보세요. 그는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에 구걸하면서 사는 인생입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주님이 주신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에 주눅들지 않고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맹인이고 거지같은 마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처지에서 ‘나를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음’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둘째 사망과도 같은 전혀 헤어날 길 없는 막막한 상황을 딛고 일어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분문 10절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주님께 죽도록 충성할 수 있습니다. 충성한다는 말씀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바디매오와 같이 말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다른 이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교회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들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맹인과 같은 삶을 살더라도 주위에서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만이 저와 여러분을 둘째 사망에서 살릴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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