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더불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더불어 하시겠다는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수원역에 가면 노숙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자고 일어나며 더불어 늘 함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거룩하신 분이 죄밖에 모르는 죄인들과 늘 함께 있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모르실 뿐만 아니라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창세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의 백성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 나라는 주님이 구원하신 백성만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식(땅에서 하늘로)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건져내는 방식으로만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가난에서 부자로 건지는 것이 아니고 병에서 고침을 받게 해서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하나님이 건져낸 백성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인데 왜냐하면 구원의 능력은 죽음에서 건져내야 진짜 구원입니다.
-계시록 강해 22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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