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짐승에게 지는 성도(58)

박성산 목사 2021. 8. 22. 23:38

짐승에게 지는 성도(계13:5-10)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 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오늘 본문에는 짐승과 성도가 서로 싸우는데 이기는 자는 짐승이고 성도는 패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시면 권세를 받은 짐승이 세상을 다스린다고 나오지요.

 

권세가 얼마나 강한지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는 반면에 싸움에는 졌지만 그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는데 이들의 배후에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도들과 함께 계셔서 세상에서는 실패를 할지언정 짐승에게는 굴복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8절에 보시면 이 땅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패배자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창세전에 기록된 이름이 적힌 생명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게 되는데 이 사람들만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훈련이나 교육을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자만이 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없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거나 성경을 다 외운다고 할지라도 짐승에게 경배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지요.

 

이 사실이 자기도 모르게 믿어지면서 ‘아멘’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된 사람일 것입니다. 9절에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처럼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성도만이 믿어지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명문 신학대학을 나오고 신학박사라도 들을 귀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신학을 한다고 해서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잖아요. 40일 금식을 한다고 해서 생명책에 자기이름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들을 귀가 없으면 짐승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생명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반드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환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 즉, 죽임을 당하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은 사람이 지금 이 땅에 있다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죽으신 사건이 현재에도 구원의 능력이 임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통해서 증명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큰 능력인가하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탄이 우리를 덮쳐도 그 힘을 뚫고 구원해 내시는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다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생명의 부활의 능력이 담겨있는 줄 믿습니다.

 

그 흔적이 성도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공중권세를 잡은 짐승의 권세에 이기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그럴 때에 우리는 아무리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안 하려고 해도 짐승이 쳐놓은 그물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쳐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난 나, 노력한 나를 위해서 한 일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나를 죽이시는 것입니다. 그 장소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는 곳이니까요.

 

그렇게 하심으로 창세전에 기록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모두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전 15: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자기 자랑을 할 수가 없어요. 사는 것도 은혜요, 죽는 것도 은혜요, 죄를 짓는 것도 은혜요 모든 것이 은혜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만 십자가의 능력이 담겨있는 성도는 세상에서 죽임(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당하더라도 인내와 믿음으로 견뎌내는 줄 믿습니다. 이 또한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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