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강해

네 몫이니라(39)

박성산 목사 2023. 8. 29. 13:33

네 몫이니라(9:7-10)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 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 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 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 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 음이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볼 때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오늘 본문만 선택하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 죄짓지 말고 믿음 가지고 살아라가 아니라 은혜를 받았으면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포도주도 즐기면서 옷도 멋있고 예쁘게 입고 향수를 뿌리면서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살려면 뭐가 있어야 할까요? 돈이지요. 돈만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겠는데 돈이 늘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를 알면 풍족하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사거나 먹거나 입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짜 돈 없이도 기쁘고 풍족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선 여러분이 생각하셔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데 방해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경쟁의식입니다. 성도는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신분인데 습관처럼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는데요.

 

혼자 있으면 부족한 걸 모르는데 누군가와 비교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지요.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제가 신학교 다니면서 기도원을 좀 다녔어요. 목적은 능력 받겠다는 것이지요. 아홉 가지의 은사를 받아야 주의 일을 능력있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시간만 나면 올라갔던 기억이 있는데요.

 

기도 제목이 하나 더 있었어요. 엘리사는 하나님께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의 달라고 기도해서 응답받은 것을 보고 저는 엘리사의 갑절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민망한 일입니다만 엘리사보다 더 큰 능력을 받아서 남들보다 더 많이 주의 일을 하겠다는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남과 비교할 필요없이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그냥 감사하면서 받고 누리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식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뿌듯하고 즐겁습니다만 예수님께서 그저 주신 사랑과 어떤 죄도 용서하셨다는 그 즐거움을 왜 누리지 못하는 걸까요?

 

그 이유가 살아가면서 남을 의식해서가 아닌지 저와 여러분은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즐거움을 막는 더 큰 장벽이 있는데 내 속에 있는 경쟁의식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살면서 선한 일과 나쁜 일을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구별 지으면서 선은 하면 할수록 좋고 악은 안 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을 더 많이 행해서 자기의 가치와 자존감을 높이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는 아름답게 보이고 존경스러울지는 모르나 저와 여러분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로막는 방해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7:16-19절에 보시면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이 말씀은 율법이 선한 것인 줄 알지만 죄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도로서 은혜로 기쁨을 누리면서 살고 싶은데 내 안에 힘들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데 바로 선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하게 살아서 기쁘고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이 말하기를 선이 무엇이며 의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선을 몰랐으면 마음 편하게 살 텐데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선을 온전히 행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남은 것은 죄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괴로움을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전 10:25절에 보시면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주님이 우리 양심을 묻지 않으시는데 왜 너희가 양심을 보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양심에 걸리면 안 하고 안 걸리면 하는 그런 기준을 세우지 말라는 겁니다.

 

주안에 있는 성도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해도 천국에 가게 되어 있고 양심대로 살아도 지옥에 갈 사람은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만약에 자기의 양심과 행동을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가름한다면 주님의 용서가 왜 필요할까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십자가의 은혜와 용서함을 받았다면 시장에 파는 것은 뭐든지 먹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먹으면 그게 기쁨이고 몫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본문 9절에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우리는 주어진 일에 열심히 살고 얻는 수익으로 자족하면서 감사함으로 마음껏 먹고 마시며 사시길 바랍니다. 성도는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성도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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